‘글을 쓰려고 앉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니 샤피로는 1962년 생이라고 합니다. 함민복의 시집을 읽고 있는데 보니까 함민복도 같은 1962년이군요. 이 책의 영어 원본은 2013년에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51살에 쓴 것이네요. 대니 샤피로는 유대교 종교의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그녀는 그런 억압적인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인지 열한 살에서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 방에 숨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소설의 자료는 아버지와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와는 원만하지 못했고 특히 어머니와는 관계가 불화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사망하고는 화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러한 것들을 회고록 형식으로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유명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대니 샤피로의 회고록이면서도 동시에 글쓰기를 하게 된 자신의 동기와 왜 글쓰기가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는지, 글쓰기를 하는 이유와 글쓰기를 해야 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그야말로 두서없이 80개의 항목을 썼습니다. 어떤 체계도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쪽수도 한두 페이지 정도가 되는 적은 양으로 썼습니다. 아포리즘 형식이라고 할 정도로 내용이 간략합니다.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혹은 저의 인생에서 글 쓰는 일이 그나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것이 잘 현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갈등이 항상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좌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니 샤피로는 서재의 게시판에 자신이 경고를 삼는 목록을 적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본따서 저도 저의 서재의 게시판에 적을 목록을 이 책에서 찾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제가 선택한 항목은 37개였습니다. 이것을 더 줄여보자고 애쓰다가 그나마 건진 것이 16개입니다. 이것으로 제가 원하는 길을 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무엘 베케트의 말이 저의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키로 했습니다. “시도했고,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시작하기. 다시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나의 서재의 게시판에 올릴 목록
1 글쓰기 전에 10분간 명상하기. 일종의 글쓰기의 ‘루틴‘이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 이치로도 타석에 들어서면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명상은 고요히 눈을 감고 차분한 상태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명상은 종종 마음을 깨끗이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휴식을 촉진시키거나,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앉아 있는 동안, 만트라(주문 또는 주술)를 반복하는 방법이나, 자신의 호흡을 관조하는 방법 등이 있다. 나는 수식관(數息觀)의 복식호흡을 하자.
2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좋은 작가는 자신에 대해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자신과 만물을 관통하는 우주의 실을 향하고 있다.”
대니 샤피로 말에 의하면 글쓰기는 단지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쓰면 글 속에서 내 삶을 만든다.
글쓰기가 구원인 이유
∙존재에게 열린 창문이 되어주었다.
∙해석하는 방식이 되어주었다.
∙이해의 능력을 확장시켜주었다.
∙지성을 강화했다.
3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한글2020‘ 새문서를 열고 앉는 것이다.
페이지 속에서 나를 만난다. 한 페이지와 마주보자. 그리고 한 단어를 두드린다.
4 작게 시작하자.
시도 에세이도 시작은 모퉁이에서 한다. 지그소 퍼즐처럼. 사소하고 작은 모퉁이를 만들면 글은 흘러간다. 목적지가 어딘지 몰라도.
5 글을 쓰는 삶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재능보다는 의자에 앉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내게 항상 필요했던 것은 인터넷을 여는 유혹의 목을 꺾는 일이었다. 인터넷을 열면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유용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열면 정말 여러 곳을 헤맨다. 그러면 기력이 빠지고 글을 쓸 수 없다.
6 ’짧고 나쁜 책‘을 쓰자. ’밑져야 본전이다.‘ 대니 샤피로가 한 말이다.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7 스스로 작가인 것처럼 행동하자.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이다.
8 자양분 얻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읽기,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고통 찾기, 인물에 감정 이입하기, 예컨대 암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인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오감(五感)‘으로 접근해야 한다.
9 글쓰기를 실천하고, 그 실천의 시간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 습관화가 되어야 한다.
10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자.
나의 단 한 명의 독자는 누구일까?
11 나는 우선 하루 한 쪽, A4용지 한 장이다.
목표 설정, 리듬, 작업을 틀, 다 같은 말이다. 대니 샤피로의 경우 하루 세 쪽, 일주일에 닷새였다.
12 결국 이야기가 되는 건, 시와 에세이가 되는 건, 하나의 전환, ’늘 그렇지 않은‘ 움직임이다.
즉 반전이 있어야 이야기가, 시가 된다.
13 몰두와 몰입.
도덜드 홀은 암 진단을 받고 이렇게 썼다. “죽음은 작업을 하게 하는 강력한 자극제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오직 그뿐이다. 몰두는 필멸, 우울, 수치, 불운, 무기력을 불러일으키는 슬픔에 대한 대책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한 사람이 어떤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성취하려고 자발적으로 노력하며 자신의 신체나 정신을 한계 너머로 확장“ 할 때 이런 순간(몰입)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14 뱉고, 뱉고, 뱉고. (명상하는 중에) 동글게 쥔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런 식으로 글쓰기의 자료를 찾아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정화도 된다.
15 애덤 필립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영감을 받았을 때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시를 쓰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으므로.
16 대니 샤피로의 서재의 게시판에 있는 목록
자기 시간을 지키자
정해진 시간 동안 작업하기
걷기
글쓰기 작업을 하는 순간이 작가에게 평안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것만 있다면 글쓰기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입니다. 이걸 아직 저는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명성을 얻길 바랄까요?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그럴까요? 그렇지 않다고 딱히 부인하기는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명예에 집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돈벼락을 맞고 싶을까요? 물론 그것을 마다할 것은 없지만 그걸 그렇게 열망할 정도로 돈에 궁색하지는 않습니다. 지적인 허영심일까요? 이건 굳이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습니다만 글쓰기를 통해 저 자신을 더 알아가고, 더 나아가서 인생의 비의에 접하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라한 삶이지만 그래도 저 인생의 각주(脚註)를 달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이렇게 무언가 이루어 보려고 발버둥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대니 샤피로의 경지까지 가기에는 요원한 것 같습니다.
제가 선택한 16개의 항목 가운데 그래도 하나만 꼽는다면 세 번째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한글2020‘ 새문서를 열고 앉는 것이다’ 그저 별 생각 없이 자동으로 한 페이지와 마주하고 한 단어를 두들길 수 있기를 염원(念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