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사두었던 시집이 3,4백권은 될 성 싶습니다. 대부분은 읽지 않고 진열만 해놓았습니다. 그나마 열심히 읽은 시집들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정진규, 송재학, 김종삼, 서정주, 김춘수, 황동규 정도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시집을 뒤졌습니다. 이런 시도도 몇 번 있었으나 언제나 실패로 끝났습니다. 대부분은 앞쪽에 있는 시집들만 뒤적이다 말아서 이번에는 거꾸로 시도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손에 잡힌 것이 함민석의 시집들입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자본주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요즘 저의 시읽기는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시집을 읽고 어떤 의미를 발견한다든가 감동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필을 들고 읽어가면서 시행(詩行)이 진술(statement)인지 은유(metaphor)인지 ⓜ ⓢ로 표시만 하고 지나갑니다. 시집 읽는 것이 부담도 없고 속도도 빠릅니다. 이건 단지 저만의 방식입니다.
그 자리에 마침 『눈물은 왜 짠가』라는 산문집이 있었습니다. 함민복이 가난하였고 나중에 강화도에 들어가 혼자 산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사나 궁금하여 인터넷에 찾아보니 50대에 본인의 시강좌에 나오던 어떤 여자분과 결혼하여 강화도에서 산다고 나오더군요.
그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은 사람도 있었나 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를 돌아보니 그럭저럭 살아온 환경이 그에 비하면 완전히 재벌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도 오남매라고 하던데 한 사람도 가난을 벗어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함민복의 아버지는 변변한 일거리가 없어 품을 팔거나 어우리소를 길렀다고 합니다. 틈이 나면 돈이 될 만한 것들을 구하러 산으로 갔습니다. 집안이 원천적으로 가난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도 선량한 분이지만 바느질 외는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함민복의 형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합니다. 그도 가난하여 산속의 농장에서 돼지 개를 길렀습니다. 개는 150마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이 되어 농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모양입니다. 형은 부도가 나서 다 처분하고 술에 취해 널브려져 있었고 그의 머리맡에는 수도 없는 도장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은 특히 함민복에게 학자금도 대주기도 하면서 도와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함민복의 동생들도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결코 생활이 넉넉지는 않았습니다.
함민복은 1962년 생입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전교생이 무료로 다니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가 그 학교에 다닌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무료로 다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두면 학비를 물어내어야 했습니다. 졸업 후 경북 월성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 4년 근무했습니다. 근무 마지막에는 우울증을 얻고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 스물여섯 살에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등단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생활을 했습니다. 청량리 창고에 딸린 지하실 방에서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 때도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하는 예가 있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제복 입은 사람들이 대합실(서울역) 바깥으로 사람들을 내쫓고 있었다. 아뜩했다. 대합실에서 밤을 보낼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대합실에서 쫓겨난 나는 먼저 돈을 헤아려보았다. 발전소 가서 한 달 동안 실습을 하라고 학교에서 준 왕복 차비 이외에 내가 가진 돈은 거의 없었다. 여관에서 잘 수도 없는 일이고. .. 교복을 입고 트렁크를 든 내가 파출소로 들어가자 경찰 아저씨들이 멀뚱히 쳐다보았다.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하고, 학생인데 갈 곳이 없어서 그러니 내일 아침까지만 있을 수 없냐고 부탁해보았다. “당신 같은 사람들 하루 수백 명씩 와. 안 돼.” 통사정을 해도 먹히지 않아 파 출소 문을 나섰다. .. “잠자는 데 천 원.“ 구세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 원을 주기로 하고 아줌마 뒤를 따랐다.’
함민복이 3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와의 사연을 읽으면서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 그녀와 헤어진 이유도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미루어 짐작한건대 아마 함민복의 가난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녀를 비난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떤 여자도 함민복과 같은 환경의 남자를 선택한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함민복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은행에서 돌아온 나는 스물세 살의 여자, H가 웃고 있는 액자 사진을 들고 한강변으로 나섰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여자, 내 곁을 떠나간 여자, H의 사진을 한강에 나가 강물에 띄워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한 여자와의 삼 년간의 추억이 사진 한 장에 컴퓨터 파일처럼 압축되어 손에 들려 있다 생각하니 사진의 무게가 제법 묵직해져 왔다. .. H에 대한 기억을 오늘부터 잊기로 마음을 굳힌다. .. 다시 웃고 있는 H의 사진에 입맞춤을 하고 준비해간 비닐봉지로 밀봉하고 강물에 사진을 던진다. 사진은 강가로 밀려왔다 떠밀려갔다 반복한다. .. 사진은 물살을 타고 강심으로 흘러들어간다.’
함민복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 역시 슬픔의 안개가 자욱합니다. 자신이 가진 돈이 없다 보니 경로당에 딸린 방에 세 들어 살게 하는 아들로서 환한 대낮에 찾아갈 수가 없어서 낮에 서점도 구경하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립니다. 어머니에게 방을 구하려고 가니 전세금이 4백만 원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돈이라고는 원고료로 받은 백만 원이 다였습니다. 그는 혼자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눈물은 왜 짠가’는 원래는 함민복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나오는 산문시입니다. 시라고는 하지만 산문 수필 같으며 모든 문장이 진술로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와 설렁탕 먹으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에게 국물이 짜다고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국물을 아들에게 부어주었습니다. 함민복은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그의 노모와의 대화를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네가 장가를 가야 내가 두 눈 감고 죽지.”
“어머니, 제가 그래서 효자지요. 제가 장가가면 어머니 돌아가실까 봐…….”
이 책을 읽으면서 함민복이라는 시인에 대해 느낀 감정은 그가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수음을 하는 사내’라는 시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니! 그의 용감하고 정직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감성이 참으로 여리고 풍부하고 순수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숙한 문학소녀의 냄새도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이미 평판을 얻어서 대부분의 그의 저작은 몇 쇄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함민복의 시집을 읽고 개인적으로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 시들의 행이 은유로 꽉 차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함민복의 시는 의외로 진술로만 구성되어 있는 시들이 적지 않게 보였습니다. 제 마음도 진술 시에 대한 여유를 갖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에 안도감이 듭니다.
‘청둥오리’라는 시입니다. 전부 진술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둥오리 알 품었다 하기에/규호 씨네 축사로 구경을 갔드랬습니다/지난번 비에 밭도랑 물이 고여/활주로가 생겨/청둥오리들 다 날아가고/소에 밟혀 다리 다친놈 혼자 남아/저리 알을 품고 있다고/예뻐 죽겠다고/규호 씨 자랑이 상당했드랬습니다/알을 낳아 혼자 날아가지 않은 것은 아닐까/말을 건네자/규호 씨 더 환히 웃고/노총각 둘이서/예뻐라/청둥오리 구경을 한참 했드랬습니다’
물론 함민복이 이런 식으로만 시를 짓지는 않습니다. 역시의 그의 은유의 감각은 예리했습니다. ‘달과 설중매’라는 시가 있습니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눈 위에 피었습니다//꽃 피라고/마음 흔들어주었으니/당신인가요//흔들리는/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사랑인가요//보세요/제 향기도 당신 닮아/둥그렇게 휘었습니다’
함민복은 이제는 어부 일을 하면서 산다고 합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의 처참한 가난이 현재의 함민복을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짐작컨대 장가도 갔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시가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