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에서 깨어나는 거대하고 끔찍한 무언가
"예사롭지 않으니 모두 안전에 만전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무전으로 강강직 장군의 목소리가 흘려 나온다.
"강 장군님 말씀대로 예사롭지 않은 곳입니다. 강력한 기운이 느껴져요. 단순한 괴물과는 차원이 달라요."
홍길동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경쾌함 대신 비장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순신은 차가운 바위에 발을 내디뎠다.
섬을 휘감은 안개와 함께 오래된 흙냄새, 그리고 무언가 끈적이는 피 비린내가 희미하게 섞여 코를 찔렀다.
그의 눈은 어둠에 익숙한 듯 빠르게 주변을 스캔했다.
마치 수백 년 전, 안개 자욱한 한산도 앞바다를 홀로 응시하던 그 순간처럼.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함께, 저 멀리 해안 절벽 위에 섬뜩한 붉은빛이 번쩍이는 것을 감지했다.
거대한 바위 뒤에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칼이나 창 같은 무기가 아닌, 알 수 없는 형상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마치 고대의 주술사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숫자는 대략 열댓 명.
침투정을 발견한 듯, 그들은 일제히 '한반도' 팀을 향해 손을 뻗었고, 검은 안개 같은 불길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이게 그 '검은 안개'인가 보구만!"
임꺽정이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그의 육중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 검은 안개마저 흩트리는 듯했다.
"주둥아리 놀릴 시간에 맞설 준비나 해라, 이 자식들아!"
임꺽정은 전속력으로 내달리며 가장 앞에 선 두 명의 로브 남성을 향해 육탄 돌격을 감행했다.
과거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이었던 그였다.
'힘으로 부딪혀 깨는 수밖에.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물러설 곳은 없다.'
그의 거대한 철퇴가 바람을 가르자, 로브 남성들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바위에 처박혔다.
홍길동은 임꺽정의 뒤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섬의 지형을 이용해 재빠르게 왼쪽 절벽 위로 뛰어올랐다.
적들의 공격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검은 안개' 추종자들은 허공에 손을 휘젓자, 땅에서 뾰족한 가시들이 솟아나고, 바위가 꿈틀거리는 등 고대의 주술로 숲과 바위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하, 귀찮게시리!"
홍길동은 날아오는 가시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숲속을 유유히 떠다니는 바람 같았다.
그의 과거는 늘 그랬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잡히지 않으면 된다. 족쇄는 지겨워.'
어딘가에 묶여 자유를 빼앗겼던, 혹은 누군가에게 속박당했던 아련한 기억의 편린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허공에서 재빠르게 방향을 틀어 적들의 뒤편으로 돌아들어갔다.
이순신은 정면에서 쏟아지는 검은 안개와 주술 공격을 막아냈다.
그의 손안의 물기동으로 안개를 가르고, 솟아나는 바위들을 부수었다.
그의 전투 방식은 마치 오랜 격전의 경험이 녹아든 듯, 한치의 낭비도 없이 정확하고 효율적이었다.
'모든 전투는 전략이며, 국민을 지키는 대의명분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 그는 언제나 무거운 책임감과 수많은 희생을 동반했다.
그는 싸움 와중에도 계속해서 적들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적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주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의지로 움직이는 듯 했다.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해! 각개격파가 아닌, 근원 차단이 우선!!"
이순신이 외쳤다.
홍길동은 이미 적들의 진영 중앙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의 목표는 주술사들의 주술을 이끄는 듯한, 가장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로브 남성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적들의 진형을 휘저으며 혼란을 야기했고, 그 사이로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마침내 리더 격인 추종자에게 접근한 홍길동은 그의 지팡이를 발로 걸어 넘어뜨리고는 순식간에 비수를 목에 겨눴다.
주술이 일순간 끊기자, 숲과 바위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임꺽정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괴물 같은 힘으로 남은 추종자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그의 철퇴가 허공을 가르며 추종자들을 날려 버렸다.
그들의 주술은 강력했지만, 임꺽정의 순수한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순신은 홍길동이 붙잡은 리더에게 다가섰다.
리더는 검은 로브 속에서 붉게 빛나는 눈동자로 이순신을 노려봤다.
"어리석은 인간들. 너희는 알지 못한다. 고대의 힘이 세상을 정화하리니..."
그의 중얼거림 속에서 으스스한 웃음소리가 섞여 나왔다.
"세상을 혼돈으로 이끄는 것이 정화라고 착각하지 마라."
이순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가 사용하는 그 힘의 근원, 그리고 너희의 진짜 목적을 밝혀낼 것이다."
리더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한 발 늦었다. 이곳의 '심장'은 이미 깨어났으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섬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섬 전체를 뒤흔드는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해안가의 거친 파도가 더욱 거세지고, 검은 안개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마치 섬 자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괴물처럼 포효하는 듯했다.
세 영웅은 눈앞의 현상에 경악했다.
'검은 안개' 추종자들은 겨우 첫 번째 상대에 불과했다.
섬의 깊은 곳에서는 이들조차 비교할 수 없는, 훨씬 거대하고 끔찍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고대의 힘, 그리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삼키려는 '검은 안개'의 진짜 계획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