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쳐가는 마음
오지랖과 순아름이 연인이 된 후, 네 친구의 모임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나오직은 여전히 김사랑의 옆자리를 지켰지만, 오지랖과 순아름은 이제 풋풋한 연인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집중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다정한 눈빛은 나오직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김사랑에게는 묘한 자극이 되었다.
김사랑은 오지랖과 순아름의 연애를 보며 더욱 초조해졌다.
자신은 여전히 '이상형'이라는 허상만을 쫓고 있는데, 친구들은 벌써 사랑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나오직의 헌신적인 마음을 알면서도, 그가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미팅과 소개팅에 나섰다.
"이번엔 진짜 괜찮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김사랑은 매번 새로운 만남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기대를 번번이 배신했다.
첫 번째 미팅에서 만난 남자는 잘생기긴 했지만, 대화 내내 자신의 자랑만 늘어놓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두 번째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는 직업도 좋고 매너도 있었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밥을 먹는 내내 하품을 참아야 했다.
세 번째 만남은 최악이었다.
남자는 약속 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나타났고, 사과 한마디 없이 건성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아, 진짜! 왜 이렇게 다들 별로야? 내가 눈이 너무 높은 건가?"
김사랑은 미팅에서 돌아올 때마다 순아름에게 하소연했다.
순아름은 김사랑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사랑아, 어쩌면 네가 찾는 완벽한 사람은 없을 수도 있어.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 거잖아."
김사랑은 순아름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이상형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나에게 딱 맞는, 완벽한 남자가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다른 만남을 기약했다.
나오직은 김사랑이 미팅에 나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김사랑이 미팅에서 돌아와 지쳐 보이면, 그는 따뜻한 차를 건네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다 주었다.
그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어느 날, 넷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오지랖과 순아름은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며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사랑은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녀는 자신이 쫓는 '이상형'이 과연 저런 자연스러운 편안함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문득 나오직을 쳐다봤다.
나오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주고 있었다.
그의 손길은 언제나처럼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김사랑은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깨달았다.
나오직은 언제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해 주었는데, 자신은 그의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만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잠시뿐이었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오직은 아니야. 나는 더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그녀는 다시금 미팅에 나섰다.
이번에는 좀 더 신중하게 상대를 골랐다.
상대는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에 다니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였다.
김사랑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매너도 좋고, 대화도 잘 통했다.
김사랑은 그와의 만남에 만족했고, 애프터 신청에도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김사랑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김사랑의 외모와 스펙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녀의 내면이나 생각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김사랑이 아닌, '명문대 간호학과 여학생'이라는 타이틀에만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김사랑은 그와의 대화에서 공허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쫓았던 '이상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껍데기에 불과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사랑은 텅 빈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실망스러운 만남들 속에서 그녀는 점점 더 외로움을 느꼈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나오직이었다.
"사랑아, 혹시 지금 집에 가는 길이야? 혹시 배고프면 내가 죽 사다 줄까? 오늘 좀 피곤해 보이던데…"
나오직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다정했다.
김사랑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그리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상형 찾기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