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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석 졸업생이지만, 백수입니다.

대학교 졸업 그 이후의 삶

by 주나라 Mar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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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수다.

서울의 한 대학교 '연기 전공'으로 수석 졸업했다.

매 학기마다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토록 애살많고, 완벽했던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백수가 되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는 뜻이다.


"너는 참 성공하기 어려운 직업을 선택했네. 한국 사회에서는..."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기분이 정말 나빴지만 돈도 잘 못 벌고, 성공한 상위 1%가 아니면 그저 배우 호소인이자 딴따라로만 취급되는 이 일을 택한 게 사무치게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마지막 학기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찾아주지 않아 방안에만 틀어박혔다.

나는 심지어 부산 토박이였기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홀로 서울에 남아있을 명분이 없었지만 그냥 떡하니 버티고 부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갈 곳이 없다는 건, 엄청난 불안을 동반한다.





2025년 1월 기준, 청년 실업자는 26만 9천 명, 이는 전년 동월 대비 5천 명이나 증가했다. 또한, 취업 준비자와 청년 무직자 수는 총 120만 7천 명으로, 전년 대비 7만 3천 명 증가했다.

-출처 한경플러스-







엄청난 취업난 속에 나는 갈 곳을 잃었다.

공부로 입시해서 대학을 가도 회사에 쉽사리 취직이 되지 않아 다들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연기과는 더 하다. 연기과는 입시 당시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지만 막상 졸업하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많은 졸업생들이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알바에 오디션을 병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나는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도피성으로 대학원을 가서 석사 공부를 더 할까, 다시 입시를 해서 학과를 바꿔볼까, 워킹홀리데이로 한국을 잠시 떠나 외국에서 여행하며 생활할까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다. 도저히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연기를 지속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졸업을 하면 바로 어떤 일이든 할 줄 알았다. 그 믿음은 나를 배신해 버렸고, 알바도 내 마음에 드는 것 하나 구하기 어려운, 나는 그렇게 갈 곳 잃은 어린양이 되어버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불안함 속에 나의 옛 시간들을 부정하다

나는 대학교 졸업을 하고,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선택해서 이토록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학생들은 학창 시절에 꿈을 꿀 기회가 없어 그저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 대부분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는 루트를 밟았다고 하지만 나는 학창 시절 꿈이 있었다. 그 작고 여렸던 어린 날의 나는 생각한 것을 강단 있게 밀어붙일만한 그런 힘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도 부산에선 내로라하는 명문 사립 인문계에 진학했지만, 교실 수업 시간에는 늘 진즉에 포기한 수학 교과서 아래에 희곡집을 깔아놓고 읽었다. 특히나 이과 과목은 연기의 꿈을 가진 내게 필요 없다고 생각해, 늘 중간고사를 볼 때면 넓디넓은 시험지에 연기 대사를 긴 시간 동안 깜지처럼 써내려 가기도 했다.


주위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며 평범한 학창 시절을 포기할 만큼 나는 내 꿈에 자신이 넘쳤다. 그리고 대학에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해서 원 없이 연기했다. 한 번도 대충 무대에 오른 적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고 지독한 공부가 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는 어마무시했지만, 다 참아냈다. 그렇게 해서 얻었던 수석졸업이라는 그 타이틀이 졸업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스스로 지나간 시간에 대해 인정해주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당장 그 성적을 갖고 나를 써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으니까. 나의 치열했던 그 시간들이 당장 눈앞에 결과물로 보이지 않으니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딴 건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나의 피 땀 눈물이 만들어낸 성실과 끈기의 산물을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조차 부정하기 시작한다면 결국 나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거...


그러니, 이 이야기는 얼마의 시간을 버텨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고독한 백수의 시간들을 온전히 견뎌내는 한 청년의 발버둥에 대한 기록을 응축해 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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