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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와약초꾼 Oct 29. 2022

지구 온도를 낮추는 농부

농부와 약초꾼과 지구 건강

 귀농을 하고 전통 농법으로 2,000평 정도의 밭을 일구었습니다.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4~5시부터 햇볕이 한창 뜨거워지기 전인 오전 11시까지 일하고 다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매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입니다. 애써 힘들이지 않고도 물이 흐르는 듯 왠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 듯 편안합니다.


 사실상 현실에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만 질주하며 업무에 따라 작업 장소를 상황에 따라 바꾸며 사는 시대에 살면서 뿌리를 내리고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한한 자연의 생명체들과의 연결된 생활은 야성의 감각을 일깨웠으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농부라는 귀한 업을 다행히 일찍 마주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농민이 자신의 업으로 농업을 선택한 까닭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직업인만큼 그 결심의 뿌리에는 보다 자연스럽게 살려는 의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막상 농사를 짓다 보면 이 일이 생각보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본래 농사라는 것이 자연 생리를 모방하지만 인위적으로 논과 밭을 만들어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화학 비료와 제초제에 대해 과신하기 일쑤이고, 유전자 조작 종자의 안전성 논란이 있으며, 항생제 남용과 공장식 축산이 이루어지고, 다량의 플라스틱 농자재 폐기물이 발생하는 등 자연의 순환성을 직접적으로 망가지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통 농업에서 관행적인 농업으로 바뀌면서 생긴 문제는 탄소 배출입니다. 논과 밭의 땅을 갈거나 뒤엎는 과정에서 토양 속에 저장된 탄소가 더 많이 방출되고, 이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기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농민은 끊임없이 날씨의 변화와 작물의 생리 그리고 곤충과 미생물의 출현 등을 목격하며 우리의 토양과 가장 밀접하게 교감하는 사람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타격의 최전선에서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보는 농민은 유례없이 높아지는 지구 온도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의 선봉을 맡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지구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농민들은 결국 자연에 답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연을 뛰어넘어야 할 대상으로 볼 것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지속 가능한 농사 철학을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물 생태계 가운데 내가 어디쯤에 있으며, 어떠한 삶을 추구할 때 미래 후손들이 행복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자연을 살리는 농민이 될지 망치는 농민이 될지, 탄소를 흡수하는 토양을 가꿀지 탄소를 방출하는 토양을 만들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2015년부터 온실가스의 감축 유도와 윤리적 소비 선택권을 제공하기 위해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를 시행해 왔으며,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 발맞추어 올해 3월에 ‘제2차 농업·농촌 분야 기후 변화 대응 기본 계획’을 수립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축산과 벼농사 분야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의 저감, 재생 에너지의 생산 및 활용의 확대, 기후 변화의 재해 예방 및 피해 완충 등의 골자에 더해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제거하는 ‘탄소농법’을 구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토양에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해 기후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작물의 생산량이 증대될 것이며 식량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땅은 어떠했을까요? 워싱턴대학교 지구우주과학부 교수인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발밑의 혁명』이라는 책을 살펴보면 ‘기후 회복력’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이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에 대처하고 사회적 및 생태학적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현재 지구에 필요한 키워드이며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일어서 회복하는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기후 회복력만을 믿고 의지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그 회복력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사람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슬픔과 무기력 증상인 ‘기후 불안증’을 앓고 있을 정도입니다. 농부에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며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기로에 놓인 것입니다. 자연의 위기는 농민에게는 머리 위의 폭탄과 같습니다. 기후 위기가 아주 급속히 진행된다면 이를 막아 내는 일도 강력해야 합니다. 지구 온도를 낮추는 농부가 되어 탄소 순환의 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땅속에 탄소를 저장해야 합니다.


 숲과 습지의 생태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자연히 알게 됩니다. 숲과 습지의 생태 공동체는 변화하는 기후를 안정화하는 회복 탄력성이 뛰어납니다. 아무리 온전한 씨앗을 뿌려도 땅이 척박한 경우에는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비옥한 숲과 밭을 만들고 논습지를 조성하는 데에 공들여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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