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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와약초꾼 Oct 29. 2022

토종 유기종자 채종포

농부와 약초꾼과 지구 건강

 토종씨앗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기후와 풍토에 알맞도록 농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선택되고 육종 되어 내려온 품종입니다. 이는 무비료와 무농약 등의 전통 농법에 잘 적응되어 왔기 때문에 병충해에 대한 수평저항성(horizontal resistance)이 있어 갖가지 병에 걸리더라도 평균 정도의 수량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관행 종자의 대부분은 F1 종자로 F2를 받아 사용할 경우 품종 고유의 특성이 온전히 발현되지 못하고 수량성도 30~40% 이상 감소합니다. 그리고 자가 채종이 힘들기 때문에 농민은 매년 종자를 시장에 의존하게 됩니다. 또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종자는 기본적으로 농약과 화학 비료의 이용을 전제로 한 품종으로 개발되며, 종자 포장 전에 화학합성 농약으로 소독 단계를 거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는 병해충 예방 및 발아율 향상 등의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는 2017년부터 거창 여성농민회 ‘토종 살림’ 모임을 만들어 10여 명이 지난 3년 동안 12개 읍면을 순회하며 295점의 토종씨앗을 수집했습니다. 또 이를 기록하고자 면 단위의 씨앗 도감에 이어 『거창 토종씨앗 도감』을 펴냈습니다. 그 밖에 ‘거창 토종씨앗 축제’, ‘토종씨앗 워크숍’, 이웃과 함께하는 토종 밥상 나눔, 토종 장터, 토종씨앗 보급소의 개소, 씨앗과 모종의 나눔, 수집한 씨앗 채종포에서 증식 작목반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295점의 지역 수집종 중에서 56점을 백두대간 수목원에 있는 장기 종자 보관소 ‘시드 볼트(Seed Vault)’에 선별하여 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에서 씨앗을 어떻게 보급하고 확대할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유기농업의 시작인 유기종자란 유기적으로 재배된 농작물에서 채종한 종자를 말합니다. 이는 농약과 화학비료 등 인위적으로 합성된 제품이 아닌 유기 자재만을 사용해 생산하고 채종한 것을 이릅니다. 최근에 경기도는 벼, 괴산군은 옥수수 F1 유기종자를 보급하는 등 유기농 종자의 대량 생산과 확산을 위해 모색하는 추세입니다.



 생태적인 농부라면 ‘토종’과 ‘유기’ 그리고 ‘종자’라는 각기 다른 주제를 화두 삼아 깊은 고민을 하며 한 번쯤 도전해 보게 되지만 ‘토종 유기종자’에 대한 전체 담론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유기농업의 근본이 되는 믿을만한 씨앗의 확보에 대한 필요성은 누구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정작 토종 유기종자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우리는 유기농 재배 농민으로서 거창군에서 수집한 토종씨앗을 유기 재배로 증식하여 나눔을 할 씨앗의 양과 품질을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각 품종의 씨앗이 품은 스토리와 재배 과정 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어 지역에서 먼저 고유한 유전자원의 가치를 증명하고 특성을 분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토종 종자에 관심을 가지는 누구나 쉽게 유기 재배와 채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토종씨앗의 유기 재배를 권장하고 확대하는 보급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유기농가에게 유기종자의 확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기종자의 보급 방안을 시급하게 강구해 나가야 합니다. 또 지역에서 수년 동안 수집한 토종씨앗을 생태적인 방식으로 계승하는 것도 지역 유기농업을 하는 농민으로서의 과업입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지역 토종 유기종자의 보급을 위해 수집한 소량의 토종씨앗을 친환경 소독 과정을 거쳐 유기 재배로 증식하여 채종 선발을 하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료와 근거를 찾아 누구라도 쉽게 유기 재배와 자가채종을 시행하여 영속적으로 씨앗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작하여 보급 중에 있습니다.


 시장에 없는 현지 적응 품종을 소농들끼리 교환하여 지역 품종을 대물림하는 것은 지역 농민들의 몫입니다. 토종 유기종자가 꼭 시장에 나와 상품화가 되어야만 보급되거나 활성화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지역에서 수집된 씨앗을 보급하기까지의 일련의 숙련된 과정과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토착 종자에 대한 집단 지식을 문서화하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이를 통해 한 마을에 하나의 농가라도 그 지역에서 재래종을 보급하는 작은 기지가 되어 토종 유기종자의 가치를 제고한다면 그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러한 토종 유기종자 채종포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정책 지원과 전문성을 확보한 공공 일자리의 뒷받침을 통해 토종 유기종자가 지닌 공동의 가치를 보다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농업과 농촌의 시작점인 토종 유기종자의 다양한 보급 사례가 더 많이 발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 내딛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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