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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와약초꾼 Oct 29. 2022

농부와 약초꾼의 꿈

에필로그

 자라나는 자식을 거울삼아 자신을 돌아보며 약초 농사를 짓고 채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등산가는 아니지만 산사람에 가까운 일상을 꾸리고 있는 것이지요. 


 여전히 시행착오는 많이 하고 있으나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를 훈련이라 여기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여러 과정들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고생했던 기억은 흩어져 사라지고 오롯이 알맹이만 남아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농촌은 문화의 근원지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과거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산과 밭에서 철마다 나오는 30여 가지의 약초를 채취하고 손질하며 자소엽, 독활, 탱자, 우슬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 이로운 풀과 열매가 많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약(藥)의 ‘치료하다, 즐겁게 하는 풀’이란 뜻이 우리가 지향하는 삶과 얼추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즐겁고 건강한 삶에 진심인 편입니다.


 농사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농부는 개인의 욕심을 경계하며 건강한 먹거리를 누구보다 고민해야 하는 진중한 직업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손수 길러온 작물의 씨앗을 자신의 목숨처럼 지켜 온 선조의 농심을 이어받아 청년 농부로서 깨어나 연대하고 농사짓는 자부심을 지켜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귀농한 지 이제 15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풋내기 농부처럼 모르는 것이 많은 또한 사실입니다. 그만큼 농사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세계가 우주처럼 드넓기 때문에 더욱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가득합니다.


 한 개인의 삶이 세상을 얼마만큼 바꿀 수 있을까요. 물론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영향력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과연 저의 삶에 대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럼에도 젊은 날에 결정했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나름대로 꾸준히 살아온 시간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흔적을 남기고자 이렇게 글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인연 덕에 살아남았고, 운이 좋았던 경우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누군가 ‘기적과 같은 일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은 바로 글을 적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꿈을 이루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계속 꺾이지 않는 마음,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마음의 방향을 알아차리는 일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농부와 약초꾼은 지금도 새로운 기적과 같은 일인 ‘지속 가능함’을 꿈꾸고 있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이 농부와 약초꾼의 정신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내공을 함양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저마다의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역에서 놀 수 있는 아지트인 자연 놀이터를 디자인할 것입니다. 막내가 좀 크면 세계 일주를 통해 우리의 견문을 넓히고, 지구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길 위에서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자연 그 자체임을 깨닫고 태어난 그곳인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자연을 스승 삼아 산과 밭에서 농사짓고 채취하는 삶을 가꾸며

 거창군 가조면에서 자라는 건강한 약초를 연구하는 유기농 농부로서

 가업을 잇는 약초 농사와 토종씨앗 채종포, 퍼머컬처 농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농부와 약초꾼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써 놓은 글입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합니다.   



끝으로 ‘정착과 유목 사이’를 제안하며 건넸던 시를 다시 적어봅니다.     


종종 나는

진보를 믿지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이미 그려졌고

가장 아름다운 시들도

내 곁에 모아두었다

음악도 더 이상은 필요 없다

가장 멋진 뇌성 번개를

이미 머릿속에서 그려보았고

가장 아름다운 눈(雪) 은

내 머릿속에서 내린다

제일 중요하다는 봉우리들을 보았으며

가장 깊은 계곡도 구경하였다

바다는 상상 속에서

언제나 가장 괄목할 만하다

자동차의 속도가 어찌

쏟아지는 비나 시편의 시들

평범한 지역과 간단한 문장

소박한 생활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종종 나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 고 믿는다

…… (중략)     


― 가브리엘레 보만, <나는 종종 진보를 믿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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