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약초꾼의 철학
‘반농반×’란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시와 농촌을 넘나들며 농사를 절반(半)하고 나머지는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절반(半)씩 한다는 의미입니다. 10여 년 전에 반농반×와 관련된 책들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반농반×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농촌은 워라밸(일과 그 밖의 삶의 균형)을 실현하기 좋은 무대이고, 반농반×는 ‘21세기 새로운 삶의 척도’라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로망’으로 여기고, 혹자는 전업농으로 향하는 과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 사회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도 현장에 있는 농민에게는 어림없는 소리로 들립니다. 적어도 여성 농민에게는 반농반×의 의미가 결코 새로운 개념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농사만 짓는 여성 농민은 없었습니다. 농사의 규모가 작고 영세할수록 가사와 육아 등 재생산 노동은 물론이고, 직조와 농사 등의 경제적 노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아이 옆에 누워 ‘너도 농부가 되어라.’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땅에서 나는 소출로만 살아도 경제적으로 충분했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농사라는 오래된 직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말하지만 농사만 지어서는 생활이 안 되고 다른 경제적 활동도 병행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여성 농민의 노동 가치에 비해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은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관절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무릎 통증이 계속되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일을 하지 말아야 괜찮아진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쑤신다는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매일 일하는 것은 몸에 기름칠하는 것과 같아 몸을 안 쓰면 오히려 고장이 난다고 여기셨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워라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사신 것이지요. 그저 세월이 만든 습관으로 몸을 계속 움직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는 농사는 농부에게는 세상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농산물을 제 값에 파는 것조차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서 반농반×는 어쩌면 사탕발림에 불과한 말장난으로 여겨집니다. ‘반×’는 하고 싶은 부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반농’보다 본업에 가까울 때도 있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내 본분은 농민이다.’라고 되새겨야 합니다. 사실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여타의 활동들에 쏟는 그만큼의 정성을 땅과 작물에 쏟는다면 농부로서의 직업에 대한 만족과 자긍심도 더 단단해질 것 같은데 지금은 그 어느 것도 성에 차지 못하는 형편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느 하나의 존재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농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엄마이자 텃밭 교사, 대학원 학생, 글 쓰는 노동자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다른 역할로 전환했고, 때로는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을 나누어 써야 할 정도로 일에 치여 살 때가 더 많습니다. 이와 같은 과중한 노동은 생태적 감수성을 둔감하게 만들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농사를 짓다 보면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하고 싶은 일들이 연이어 생깁니다. 집 앞에는 예쁜 꽃밭을 만들어 가드닝을 해 보고 싶고, 밭에 씨앗을 심다 보면 지역 아이들과 농사 수업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꽃이 피면 그림을 그리고 싶고, 벌레가 많아지면 작물의 저항성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은 의욕이 일어나며, 수확기에는 신선한 농산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나누어 먹고 싶습니다. 매일 영농일지를 기록하며 내가 겪은 한 해 농사를 글로 남겨 보고 싶고, 농한기에는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등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아마도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들을 나열하면 한나절 동안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농민은 생태계 전반에 다양한 경험 요소들을 두루 갖춘 직업임에는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한편, 농촌에 할 일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할 만한 일이 없다며 도시로 떠나는 지역 청년들의 모습에서 모순된 현실을 마주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반농반×가 새로운 자립 모델이자 귀농이나 귀촌의 동기 부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만, 이제는 농업 및 농촌의 공익성과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나아져 ‘농민의 소득 안정화’에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경우에 이르면 반농반×가 몇몇의 성공 사례나 실속 없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닌 보다 현실적으로 농촌 문화에 파고드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