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장애인 봉사를 하러 가는 날에는 아직도 긴장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두 달 넘게 만나고 있지만 매일매일이 새로 시작하는 1일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돌본다는 것은 생각했던 대로 육체적인 수고가 따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육체적인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도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언제든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은 하기 싫은 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나 혹은 하고 싶은 것을 저지당했을 때, 또 자신이 소외되고 있다고 느꼈을 경우에 예상치 못하는 충동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강화유리로 된 두꺼운 화장실 출입문을 팔꿈치로 가격해서 깨뜨리는 사고가 일어났었다. 공 던지기 게임을 하면서 5번씩 던지라는 규칙을 두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계속 던지고 싶었으나 말로 표현을 못하니 갑자기 달려가서 유리문을 깼던 것이다. 불과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자칫 여러 명이 다칠 수도 있었던 사고였는데 천만다행으로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인 유리조각을 치우다가 선생님들의 손과 발에 유리가 박혀서 치료를 받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으니 망정이지 참으로 가슴 철렁한 일이었다.
초보자인 나에게 이런 현장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선생님들과 실습생, 봉사자 등 충분한 인력이 옆에 있었음에도 너무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서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 센터에는 깨질 위험이 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벽시계는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만큼 천정 가까이 걸려 있고 거울도 컵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사고 이후에는 강화유리문에 반투명 접착 시트지가 붙어 있다. 현장의 사정은 걸음마를 시작해서 여기저기 헤집고 돌아다니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사정과 비슷하다. 위험요소를 미리 제거해 놓아야 하고 어느 한 명도 시야를 벗어나 있으면 안 된다.
현장에 일손 하나 보태면 어쨌든 도움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준비도 없이 발을 들였던 거 같다. 이제야 틈틈이 동영상 강의도 듣고 비대면 수업에도 참여하며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한고비 한고비 넘어가고 있다.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사고나 수술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 몇 배로 많다는 것도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실제로 센터에 그런 분도 몇 있는데 P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 났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실시한 수술로 오히려 후유증까지 더해진 장애인이다. 그는 매일 국어, 영어, 수학 학습지를 푼다. 세자리수 곱셈까지도 척척 해 내고 R과 L 발음을 구분할 줄 안다. 필라테스학원도 다니고 도자기도 배운다.
칠교 맞추기를 하고 있던 P가 일어나더니 의자를 밀어서 옮기려 한다. 자기 몸 하나 추스리기도 쉽지 않은 그가 왜 의자를 옮기고 있나 주시하고 있었는데 내 앞에 갖다 놓더니 앉으라고 한다. 나를 향해 “꺼져”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는데 뜻밖의 호의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현장에는 힘든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웃을 일도 많다.
그들과 있으면 누구나 무척 중요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준비 안 된 봉사자일지언정 일손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할 수 없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모든 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때때로 울적하다. 그러니 나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고 그런 장소가 있고 아직은 건강이 허락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P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매일매일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 같다. 힘들여 모래성을 쌓지만 파도가 밀려와 흔적도 없이 쓸어가 버리고 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좌절이나 실패를 떠 올리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다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이고 그는 다시 팔을 걷어붙여 가장 간절하고 그 누구의 노력보다도 가상한 매우 특별한 모래성을 또 쌓아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