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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Jun 06. 2022

오토파일럿(자동 조종)으로 비행하면 조종사는 뭐해요?

[질문 있어요! #16]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좀 편하게 비행하면 안 돼?


참 곤란한 질문이다. 자동조종장치를 쓰는 동안  조종사는 '조종'을 안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조종'을 안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이 질문 참 많이 받는데, 뭐라 설명하기 참 애매하다.   


"뭐하긴, 멍 때리지."


설명하기 귀찮아 농담으로 대답하면 적당히 받아줄 것이지, 굳이 눈치 없이 선을 넘는 사람이 있다.  


"야, 세상에 그런 좋은 직업이 다 있어? 꽁으로 먹는 거네! 안 그래?"


이 말 한마디에 스팀이 뿜뿜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 입에서 또 어떤 대답이 나올지 흥미진진하게 기다린다.


"아닌데! 오토파일럿 쓴다고 비행기가 혼자 알아서 가는 줄 알아? 계속 감시하고, 수정하고, 입력하고, 점검하고..."


"조종사가 왜 조종은 안 하고 입력하고 수정하고 그런 걸 해?"


"아니라고! 현대 비행기는 컨트롤보다 매니지먼트가 더 중요하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조종은 못해도 매니지먼트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의미 없다. 딴 얘기해. 너네들을 어떻게 이해시키겠냐?"


졌다. 먼저 화내면 지는 건데.


비행을 모르는 사람에게 오토파일럿을 설명하긴 정말 애매하다. 보통 사람들은 ‘조종사’가 ‘조종을 한다’고 하면 조종간을 움직여 비행기를 직접 움직이는 것만 상상한다. 나머지 일들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라디오 음악을 선곡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비행은 그렇지 않다. 자동조종을 사용한다고 해도, 조종실에서 할 일들이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친구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정상 상황에서 자동조종장치 덕분에 조종사의 업무 강도는 매우 낮아지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 본 사람은 더 잘 알 것이다. 얼마나 편한가? 주행 감시를 한다지만, 앞만 보고 있으면 눈꺼풀이 내려오지 않나? 비행기도 그렇다. 몸 쓸 일도, 머리 쓸 일도 훨씬 줄어드니 반박하는 나도 속으로 뜨끔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을 편하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상상황이 닥치면 내 역량과 에너지를 100% 가동해야 하므로, 평소에는 가벼운 긴장 상태 정도만 유지하며 배터리를 세이브할 필요가 있다. 기상이 좋지 않거나, 비행기가 고장 났을 때처럼 스트레스가 커지면 오토파일럿은 큰 역할을 한다. 문제가 생기면 자동차는 잠시 세워두고 조치를 할 수도 있지만, 비행기는 공중에 어디 파킹 할 데도 없다. 그래서 오토파일럿은 특히 비상상황에서 톡톡히 제 몫을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조종을 맡길 믿음직한 조종사가 한 명 더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은 뭐고, 어디까지 자동으로 조종이 가능한지 설명하는 것은 어렵고 재미도 없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요새 사람들이 '오토파일럿'이란 말에 점점 친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글라스 잔에 테슬라를 말면서 완전 자율주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의 플랫폼에 위성 통신으로 연결된 로봇 택시들이 돌아다닐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나아가, UAM(Urban Air Mobility)이 조종사 없이 도심의 하늘을 뒤덮고 다닐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에도 오토파일럿의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토파일럿이 뭔지.



비행기에는 아직 AI가 없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AI라고 본다. 테슬라는 수많은 주행 데이터를 갖고 여러 가지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AI가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으나 최종 목표인 완전 자율주행(FSD)을 향해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비행기에는 아직 AI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첨단 자율주행 자동차의 AI가 하는 일을 비행기에서는 아직도 말랑말랑한 사람의 뇌가 하는 것이다. 그 뇌가 바로 조종사의 뇌이다. 조종사의 경험이 데이터베이스이고, 주어진 상황에 판단하고 대응하는 것도 조종사의 역할이다. (단, 첨단 군용기의 기술은 잘 모르겠으니 이 글은 민간 상업용 항공기에 국한한다.)


쉽게 말해,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은 아직까지 상상하는 것만큼 똑똑하지 못하다. 노동은 주로 오토파일럿이 하지만 머리는 아직 조종사가 써야 한다고 할까. 비행기 오토파일럿이 역사는 훨씬 긴데 왜 테슬라만큼 똑똑하지 못할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내 생각에는 혁신 기술에 대한 보수적 태도와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비용의 문제가 있을것 같다.


비행기의 오토파일럿이 자율주행 기술만큼 빠르고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발전을 했다. 초창기 오토파일럿은 그저 주어진 속도, 고도, 방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비교하자면 자동차의 크루즈 컨트롤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배에도 자동조종장치가 있는데, 배나 비행기는 자동차처럼 복잡하고 장애물이 많은 지면 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서 오래전부터 이러한 기능이 가능했던 것이다. 배의 경우에도 암초가 많은 해역을 지날 때에는 자동 조종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관성항법장치, GPS의 개발로 비행기가 스스로의 위치를 알게 되고,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면서 자동조종장치는 엄청난 진화를 이루었다. 스스로 계획된 비행경로를 따라 항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연료 소모를 계산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비행기 시스템을 스스로 진단하여 이상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다. 즉, 구식 비행기에 탑승하던 항법사와 기관사의 직업을 빼앗은 것이다. 이후 비행기에는 조종사와 부조종사 두 명만 남게 되었다.


아직까지 오토파일럿이 비행하는 것을 감시하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조종사의 역할이다. 언제든 필요하면 조종사가 오토파일럿을 오버라이드(Override)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 꽤 많다. 쉽게 말해 오토파일럿보다는 조종사가 계급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이다. 에어버스 시리즈 항공기는 공중에서 어떤 위험 상황이 되면, 예를 들어 매우 위험한 자세, 기체가 파손될 수 있는 초고속, 실속의 위험이 있는 초저속 등의 특정 상황에서 조종사의 권위를 빼앗아 버린다. 그 순간 조종간이 먹통이 되어 조종사가 아무리 조종간을 흔들어도 비행기가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자동조종장치가 일단 안정된 상태로 비행기를 회복시킨 후 다시 조종 권한을 조종사에게 돌려준다. 미국의 보잉사 비행기에도 비슷한 기능들이 있지만, 조종사가 마음먹고 힘으로 조종간을 세게 움직이면 자동조종장치의 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종 권위를 조종사에게 주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비행 철학 차이이다. 그래서인지, 조종사 급여도 미국이 유럽보다 낫다.



자동 착륙? 오케이, 자동 이륙? 아직은..


그렇다면 오토파일럿이 어디까지 비행기를 자동으로 조종할 수 있을까? 비행기에도 언젠가 4차 산업혁명이 찾아오면 조종사라는 직업도 개념이 바뀔지 모른다. 그러나 항공 산업은 신기술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어서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좀 전에 플랫폼 이야기도 꺼냈는데, 비행기를 관제하는 것도 아직은 주로 사람에게 의지한다. 관제 시설과 장비에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특히 큰 공항과 그 주변의 비행 관제는 아직도 관제사의 판단과 결정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관제사도 조종사처럼 아직 AI에게 직장을 뺏기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복잡하고 교통량이 많은 공항 주변에서는 비행기를 프로그램된 대로만 움직여서는 통제할 수 없다. 공항 입, 출항 단계에서는(보통 지상에서 고도 7,000미터 정도 사이의 구간이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지시를 내리고, 조종사는 그 지시에 따라 조종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완전 손으로(수동으로) 조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리 프로그램한대로 비행은 할 수 없으나, 좀 전에 말한 초기 기본적인 오토파일럿처럼 비행을 할 수는 있다. 즉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속도, 고도, 방향을 조종사가 수시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비행을 하는 것이다. 복잡한 공항에서는 이것도 바쁘지만 손으로 비행하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다.


자동착륙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자동착륙 유도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비행기에 자동착륙 기능이 있으면 언제든 자동착륙을 할 수 있다. 특히 안개가 껴서 시정이 나쁠 때 사람보다 오토파일럿에게 더 유리하다. 눈이 없어도 착륙을 할 수 있으니까. 오토파일럿을 이용한 자동착륙은 오래전부터 개발되었고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륙은 아직도 오토파일럿이 할 수 없다. 이륙 중 엔진 고장 등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오토파일럿보다 훈련된 파일럿이 더 낫다고 보는 것이다. 착륙도 항상 오토파일럿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종 성능에 영향을 주는 고장이 생기거나, 바람이 정해진 속도보다 강하게 불면 조종사가 수동으로 착륙해야 한다. 오토파일럿 이 아이, 열심히는 하지만 아직 비행 더 배워야 한다.  


보통 비행기들은 기종에 따라 이륙 후 지상 50미터 ~ 300미터 정도부터 오토파일럿을 사용할 수 있고, 자동착륙이 가능한 조건이면 착륙 후 활주로에서 나가기 전까지 오토파일럿을 사용할 수 있다. 조종사들이 자동착륙을 매번 하지는 않는다. 나처럼 드물게 사용하는 사람은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안 한다. 대부분의 조종사는 자신이 오토파일럿보다 착륙을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믿거나 말거나.



오토파일럿은 포기 못해


요새 웬만한 국제선 비행에서 오토파일럿은 필수 장비이다. 비행기가 워낙 많아지다 보니, 비행기와 비행기 사이에 간격을 점점 좁혀서 관제를 한다. 촘촘한 비행 관제를 위해 특정 환경에서는 게으른 사람 대신 부지런한 오토파일럿에게 비행을 맡기도록 의무화한다. 또한, 어떤 곳은 복잡한 산악 지형이나 주변 소음 문제 등으로 반드시 오토파일럿을 사용하도록 규정한다. 복잡한 경로를 매우 정확하게 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라도 긴 시간 동안 오토파일럿만큼 칼같이 정확하게 고도 경로를 유지하지 못한다.


10,000미터 이상 고고도에는 공기가 희박하여 조종도 매우 섬세하게 해야 한다. 조금만 과격하게 비행기를 움직여도 비행 자세와 속도가 불안정 해질 수 있다. 옛날 찰스 린드버그나 에밀리아 에어하트는 수동 조종으로 대서양도 건너고 세계일주도 했는데 요새 조종사들 군기가 빠져서 너무 변명이 많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뭐, 또 다른 변명을 안 할 수 없다. 그 시절은 낮은 고도로 비행하므로 공기 밀도가 높아 조종성이 더 안정적이었다. 더구나 개미 한 마리, 아니 파리 한 마리 없는 하늘을 혼자 비행하면서 고도, 경로쯤 대충대충 유지해도 노바디 캐어다. 반면에, 지금은 대충 비행하다 관제 위반이라도 하면 집에 가서 한 동안 반성하면서 쉬어야 한다. 린드버그 선생님이나 에어하트 선생님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은 선구자, 영웅, 스타이고 우리는 승객의 안전을 위임받은 그냥 회사원이다.  





오토파일럿은 소중한 나의 부조종사다. 그러면, 옆에 앉은 인간 부조종사보다 나은가? 그만, 말조심해야지. 하지만 언젠가는  기계 부조종사가  자리에 앉을 것이다. 지금은 뇌가 손톱만 해서 입력하는 대로만 계산하고 움직이지만, 머리가 점점 커지고 눈도 귀도 생기면 언젠가 훌륭한 조종사가 되어있겠다. 나의 오토파일럿이 무척 자랑스럽지만, 그때는 조종사들 모두 손잡고 고향 앞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니 걱정이다마무리횡설수설.  뭐래냐.


다시 정리하겠다. 오토파일럿이 비행하면 조종사는  하느냐? 아직도 조종사가 해야  일이  많다. 오토파일럿이 아직 어린애라서 조종사들에게 육아 노동이  있다. 하지만 이제  자라서 덕분에  편하게 일할  있다. 오토파일럿한테 숙제시켜놓고 조종사들은 잠시 커피도 한잔하고 가벼운 대화도 한다. 비상에 대비해서 항상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으니  정도는  봐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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