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막 오픈한 카페에 첫 번째 손님으로 방문한다. 잔잔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으며 벽면 한가득 차지하고 있는 유리창 너머 풍경을 바라본다. 늦여름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까지 모든 게 여유롭다. 며칠 전부터 읽고 싶어 벼르고 있던 책을 펼친다. 귀에 들리는 음악소리, 입안에 맴도는 커피 향, 눈으로 읽는 책의 구절들.. 비로소 내 모든 감각이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는 행복이란 이렇게 단순한 건데도 왜 이렇게 갖기 어려운 걸까.
긴 육아휴직 끝 직장에 복직한 지도 삼 개월째. 일도 사람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도 깊은 고민 속 표류 중이다. 난 일에 욕심이 있거나 직업적 성취로 보람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다. 오직 워라벨만을 위해 선택한 직업이 사실은 워라벨이 제일 보장되지 않는 직장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게 문제지만. 특히나 복직하고 나서는 육아도, 일도 어느 하나 전념하지 못한 채 겨우 버텨나가는 느낌이다. 아이에 대한 보살핌, 업무적 성취, 나의 개인적 행복 추구…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가며 출근하고 있는 걸까.
사실 답은 너무도 명료하고, 잘 알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에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살림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나의 투정은 사치에 불과하다. 이 나이에 경단녀가 아닌, 직장에서 중간급 위치의 고참으로서 인정받으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가끔씩은 나도 그런 것에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아이가 아파서 울고 매달려도 매정하게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출근하는 날이면 무너지는 가슴에 마음을 부여잡고자 계속돼내어 본다. 이 모든 것이 다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난 지금 틀리지 않았다고.
나는 오늘도 사표를 내던지지 못한다. 나의 긴 휴직기간 동안 힘든 내색 한번 없이 가족을 위해 직장을 다닌 남편에게 이 힘든 짐을 혼자 지게 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크고 난 후의 자아실현을 위해 버티라고 하는 말을 믿어보고 싶다. 그래도 너무 지치고 힘들어 내 자신이 무너지는 날이면 오늘 같은 휴식을 주어야지. 예쁜 카페에 앉아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에 책 한 권 읽는 여유로운 휴식 말이다.
이 시간만큼은 엄마도 아내도 직장인도 아닌 오롯이 나로 살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