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중에 이런 제목이 있다.
내게 무해한 사람들.
비록 책 내용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지만 제목만은 또렷이 남아 아직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런 사람이 가족 아닌 타인 중에 존재한다고?
내가 너무 시크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바로 얼마 전에도 난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오해받는 경험을 했다. 다 짜인 판에 나를 초대했고, 업무적인 질문에 '그런 사실이 있다'라고 대답했을 뿐인데 나중에 보니 마치 내가 문제 제기를 해서 판을 다 갈아엎자고 한 것처럼 선동의 앞잡이가 되어 있었다. 이유는 더 황당하다. 조직 내의 권력 다툼 때문이란다.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이면 이렇게 속이려 할까, 그동안 내가 보냈던 호의가 오히려 상대에게 이용당한 것일까..
잠도 오지 않고 어쩌다 잠들었다가도 명치가 꽉 막히고 답답해 잠이 깼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찬물을 아무리 마셔대도 속에서 천불이 났다. 더 이상 친절하게 대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가, 나쁜 놈들 천벌이나 받으라고 못된 생각도 했다가, 이게 다 내 탓인가 싶어 울적해했다가, 완전히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뜩 이 문구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들. 그래.. 나에게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들. 힘들 때 나보다 먼저 울어주고 웃어준 사람들. 그러니 내가 그 사람들에게 지지 않고 버텨내려면 모두 다 잊어야 한다. 내게 해로운 사람일 뿐, 소중한 사람은 아니니 크게 반응하고 상처받지 말아야 한다. 재수가 없으면 크게 한 번 카악, 침이라도 뱉을 일이지 우울해하고 화낼 일이 아니다.
출근만 생각하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일요일 오후.
난 습관적으로 내게 해로운 사람들 생각을 하려다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어 이제는 제법 시원해진 늦여름 바람을 맞는다. 인생 그까짓 거, 이렇게 한철 바람으로 흩어져갈 것을 왜 저 작은 권력욕에 물들어 주변 사람을 모함하고 힘들게 하는가. 들판에 핀 이름 없는 꽃처럼, 소소하고 무해한 사람으로 일평생을 사는 것이 나의 꿈 이것만.
一場春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