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술을 못한다. 그래서 복직하고 제일 곤란한 자리가 회식이다. 우리나라 회식문화에서는 술이 빠질 수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전 술 못합니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따라붙는 말이 "왜?"이다. 물론, 단순히 궁금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못 마십니다."라고 하면 "아, 그래요."하고 끝이 나면 좋으련만,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되는 경우도 생각보다 꽤 많다. 그러면 나조차도 왜인지 모르겠지만 구구절절 내 아픈 이야기를 설명해야 한다. 구태여 내 입에서 '암'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나서야 분위기가 숙연해지며 질문이 끝난다. 이 상황이 서글프면서도 조금은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건강상태를 강제 노출당한 느낌이랄까. "나 암환자예요~"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결혼 직후 남편과 함께한 건강검진에서 종양이 발견되었다. 매번 동네 병원에서 간단한 피검사만 하던 내가 남편의 권유로 난생처음 받은 대학병원 정밀 종합검진에서 이상신호를 발견했으니, 남편은 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고민 없이 같은 병원에서 바로 수술을 받았고 회복기도 지나기 전, 우연히 아기가 찾아왔다. 한 해에 두 번의 큰 수술을 해서였을까. 출산 후 일 년 가까이 정상적인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은 육아에 직장생활까지 하니 언뜻 보면 평범하게 살고 있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고, 가끔씩 목이 뻐근하고 찌릿찌릿하지만 아프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산다. 하지만 복직한 후 생리불순에 소화불량도 모자라 이석증 판단까지 받고 나자 몸이 힘든 건 둘째치고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집안의 경제적 사정을 생각하면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다. 평범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사는 일이 이다지도 어렵다.
삼십 대 중후반. 요즘은 백세시대라고들 하니 젊다면 꽤나 젊은 나이다. 아직은 해야 할 일도, 해보고 싶은 일도 많은데 몸이 안 따라줘야 쓰겠는가. 그렇다고 직장 업무 적당히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줄 수도 없는 일! 마음만이라도 건강하게, 활기찬 출근길을 나서고 싶다.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