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필집은 십 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다. 일생을 청빈하게 살아온 그의 생각과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체마저도 간결해 가장 닮고 싶은 글이라고나 할까.
이와는 반대로 내 삶은 풀소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 관심 가는 분야가 생기면 물욕이 따라붙기 마련인데, 젊은 시절엔 책과 패션에만 한정되었던 관심사가 결혼 후 요리, 인테리어 등으로 확장되면서 그릇과 가구, 소품의 세계에 눈을 떴다! 주방은 이미 브랜드별 그릇 세트들로 꽉 찼고 집안 곳곳은 가구와 소품들로 빈 틈이 없다. 그릇 하나에 수십만 원, 가구 하나에 수천만 원을 호가할 정도의 고가 물건들을 소유하진 못해도 사고 싶은 갈망이 항상 내재한달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평온하고 행복한 시절은 물욕 없이 책 한 권, 차 한 잔이 허락되는 여유 있던 시절이었다. 글 한 소절에도 사색에 잠기고 노트에 끄적여보며 정신적 충만함을 느꼈고, 같은 육아 동지들과의 소소한 담소가 삶의 위로와 활력을 주었다. 소유욕은 내면의 허전함 때문에 일어난 마음이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허전한 걸까?
바쁜 일상 속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살면서도 마음은 텅 빈 것 같은 때가 있다. 서로의 눈치를 보고 계산을 하며 자신의 이권을 위해 앞뒤 다른 모습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 때. 팽팽하게 긴장관계에 놓일 때. 회사는 친목을 다지는 곳이 아니고, 경쟁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은 당연한 것이라 해도 요즘 많은 사람들이 힐링과 워라벨을 외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속 공허함의 문제는 나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미디어 발달로 더 비싸고 화려한 것이 전부인 것처럼 노출되는 시대. 심적 공허함에 더해 우리의 평범한 삶이 더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법정스님이 낡은 승복을 입고 있다 하여 살아생전 그 누가 스님을 무시하고 천히 여겼는가. 결국 자기 마음의 문제인 것을..
드레스룸 전체를 가득 채운 고가의 옷과 명품들로도 만족되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