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중 6개월을 정신병동에서 보냈다. 극단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겠지. 사실 나조차 이게 내 이야기가 되리라곤 생각 못했으니까.
첫 입원을 마친 후 병원에선 앞으로 '평생' 약을 먹으면서 '평범하게' 살면 된다 말했다. 쉽게 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아파 본 사람은 안다. 그 사실 자체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수없이 삶을 포기하려 했다. 날 살린 모든 사람들을 원망했고,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찾아내려 온갖 사람들을 탓했다. 몇 년을 기다리고 또 기대해 왔던 내 젊음이 초록색 병원복으로 덮여가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미워하고 또 미워하기만 했던 내 병을 받아들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25살이 된 지금에서야 서서히 깨달았다.
나를 설명하자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선생님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로 대학에 입학한 지 3년이 좀 넘어갈 때였다. 목요일마다 가는 아동센터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 하루는 기다려지지 않았다. 암막커튼이 늘 쳐져있던 자취방의 침대에 누워 울면서 생각했다. 왜 세상은 나에게만 이리 각박할까. 딱히 뭐라 할 이유도, 큰 사건도 없었다. 마음이 무너지자 일상이 무너지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뭘 먹어도 토하기 일상이었고, 166cm에 48kg까지 몸무게가 빠졌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자 했으나 병적인 충동성을 이기지 못하고 밤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혹시 아빠 조울증 있어? 조울증은 유전된다던데. 나 요즘 정신과다녀." 엄마는 너 같은 애가 무슨 정신병이냐고 제정신이냐 말했다. 예상밖이었다. 사실 나는 도움이 너무 필요했고, 나를 매일 자랑스럽다 말했던 엄마가 내 아픔을 알아주고 위로해 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잊고 있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내가 잘할 때만 좋아해. 내가 잘못했기에 미움받아도 당연한 거야. 사람들이 진짜 나를 알면 나는 버려질 거야. 결국 끝까지 날 사랑해 줄 사람은 없어.
그리고 첫 번째 자살시도를 했다. 우울하기만 했나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나는 5일 전 본가에 다녀와 강아지와 산책을 했고, 전날 하루 10시간짜리 일당을 주는 포장 알바에 열중했다. 지금 와서 그때의 나를 되돌아보면 질책하고 원망하기보단 그냥 같이 있어주고, 밥을 먹고, 산책을 나가고 싶다. 그 일상이 내 선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내 마지막의 기억이 따뜻했다면 어땠을까.
동정받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소개는 여기까지 하겠다. 지금의 나 또한 병을 완전히 이겨낸 것은 전혀 아니다. 나는 아직도 한 달에 2번 주치의와 상담을 하고, 2번 교수님을 만나 약을 조정한다. 약을 하나만 줄여도 그다음 날은 바닥과 꼭대기를 널뛰기 십상이다. 나는 기숙사의 친구들이 잠에 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주 울고, 불안이 닥칠 때면 화장실에 숨어 눈을 감는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아픔을 내 약점으로 삼았던 시간들을 버텨냈기에, 더 많은 사랑의 필요를 아픔으로 나타내던 나를 조금은 이겨냈기에, 아직 그 시간을 거쳐오는 모든 사람들과 이 과정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교사가 되기만을 고대하며 다녔던 대학을 자퇴하고, 그 후 3년의 시간을 죽기만을 위해 살아내며 보냈다. 거의 평생을 목표로 삼았던 꿈을 포기했다는 것도 내 큰 절망의 원인이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앞으로의 나는 무엇을 해도 실패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병을 통해 찾은 또 다른 나를 위해 간호대학을 다니며, 첫 학기의 마무리를 앞뒀다. 앞으로의 조울증과의 동행 또한 물론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