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더 우울하게 #9

5년 차 조울증 환자의 폐쇄병동 일기

by 찬빈

2025.3.10

현실로 돌아가기 무섭다. 퇴원해도 되는 상태는 맞을까? 근데 여기 있는다고 자해나 자살사고가 나아질 거라는 보장이 없다. 모르겠다. 전에 내가 간호사라면 나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은지 생각해오라 하셨는데 내가 생각한 걸 말씀드리니 그저 팩트폭행을 하고 싶은 거냐 하셨다.

[너 자신을 증명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이게 팩트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해를 계속하는 나의 물건을 모두 뺏겠다고 했으니 그 부분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있고 싶지 않다. 살아있어서 힘들고 살아있어서 우울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근데 난 살아야 한단다. 나 때문이 아닌 주변 사람들 때문에.


00 언니를 보면 병원에 다니던 초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쓰인다. 불안해하고 또 그 불안을 다루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고. 마냥 혼란스러워 힘들어하고. 하지만 언니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동생들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항상 도와주고 싶다. 언니의 아픔이 하루빨리 나아지길 간절히 바란다.


자해를 하지 않으려 드레싱을 했는데 그 밑에 또 자해를 했다. 병신 같은 나. 수치스러운 나. 나는 4주간 몇 번의 약속을 지켰을까? 자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저 도움을 요청하기. 그 하나의 숙제를 부여받았을 뿐인데 나는 그것조차 지키지 못한다. 나의 자해하고 싶은 마음이나 자살충동은 너무도 개인적이고 수치스러워서 남들에게 말하기 껄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들이 주는 도움 또한 믿을 수 없다. 이러니 4주를 입원해도 나아질 리가.


2025.3.11

오늘도 자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오셨다. 어제 친한 동생과 함께 자해를 하려고 했던 상황에 대해 물어보셨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죄송하다고 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철이 들려면 아직 많이 멀었나 보다. 팔은 그냥 보고 자극받지 않게 드레싱으로 가려주신다 하셨는데 진짜... 좀 당황스럽게 크게 드레싱 해주셨다.

퇴원 후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죽지 않고 ECT를 받을 수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내 상태를 생각하면 입원해서 ECT를 받는 것이 낫겠지만 내 일상을 생각해, 나의 삶도 함께 영위할 수 있도록 외래를 권유해 주셨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저 누워서 눈물만 흘릴 내 미래가 상상이 간다. 무섭다. 그저 무섭다. 상담도 ECT도 일상도 학교도 모두 무섭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집을 입원실처럼 통제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 하셨다. 9시 넘어서는 외출 안 하기. 엄마가 항상 나와 함께하기. 자해도구는 압수하기.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은 10번째 입원인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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