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가 보고 싶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그를 만나기 전 봄.
나는 4학년 1학기를 맞아 졸업을 위해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 (URP)에 참여했다. URP란, 졸업을 앞둔 학부생이 미리 랩실에 들어가서 하나의 연구주제를 놓고 한 학기 동안 연구를 해서 발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학기 동안 연구 성과를 낸 후, 방학 중에 발표와 심사를 통해 1등에게 해외학회비용이, 2등에게는 노트북, 3등에게는 넷북이 주어지는... 꽤 학부생에게 규모가 큰 대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목표를 세우지 못한 채 계속 방황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우선은 눈앞에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했다. 그때는 그게 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곧 졸업을 해야 했기에 URP는 나에게 언젠가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고 이왕 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흥미롭다고 여겨질 수 있는 연구주제를 선택해 전자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분야는 바로, 통신이었다.
나는 수학이 좋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들어갔던 수학과의 해석학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수학과는 다르게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 과목들은 마치 숫자가 살아서 꿈틀꿈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자과는 크게 회로, 반도체, 통신 이렇게 3가지의 카테고리로 공부하는 분야를 고를 수 있었고, 나는 수학적 이론들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통신 과목들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걸 느꼈다.
그렇게 나는 랩이란 랩을 다 돌아다니며 교수님들과 면담을 했고, 그중 전자과의 이융 교수님 랩에 들어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연구주제는, 게임이론을 활용한 멀티 플레이어 로밍시스템이었다. 말하자면, 통신사마다 기지국이 있는데, 내 핸드폰의 계약 기지국으로만 통신을 잡는 게 아니라 게임이론을 토대로 근처 근거리에 있는 기지국으로 자동 연결되어 에너지의 낭비를 줄이고자 한 연구였다. 내쉬균형(게임이론 중 하나)을 토대로 알고리즘을 새롭게 만들어 내야 했던 이 주제는 학부생이었던 내가 호기롭게 도전했으나 정말 만만치 않았다. 처음 보는 수식들과 알고리즘으로 늘 씨름해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이 주제의 메인이었던 나의 사수가 갑자기 해외로 사라지는 바람에 혼자 모든 연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근데 어쩌겠는가. 포기할 순 없었다. 4학년 1학기. 수업을 듣고 나면 랩에서 살았다. 밤을 새기도 하고, 늦게까지 랩실에 혼자 끙끙거리며 앉아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뭐라도 해야 해서 정말 뭐라도 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선 했다. 그런 나를 좋게 봐주셨던 건지 교수님께서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사수가 사라진 자리에, 교수님께서 부족한 부분들을 가이드해주기 시작하셨다. 결국 나는 툭하면 교수님 방으로 찾아가 교수님께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며 연구를 진행해 갔다.
난생처음 하는 연구.
난생처음 보는 수학과 알고리즘.
내가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답이 세워지지 않았는데, 있는 힘껏 나의 모든 것을 끌어다 이 시간을 보내는 게 나에게 많이 버거웠나 보다.
랩실에서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늘 큰오빠에게 울며 전화를 걸었다.
"오빠. 너무 힘들어. 나 공대 맞을까..? 나 이렇게 계속 몇 십 년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게.. 효선이 성향이랑은 좀 힘들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한양대 대학원에서 컴퓨터 박사과정을 보내고 있던 큰오빠는 늘 어린 동생의 투정을 잠자코 들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큰오빠도 참 힘들었을 텐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항상 강해 보였던 큰오빠도 아버지가 그리워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미처 다 해석하기도 전에 나는 열심히 살아갔다. 그래서였을까. 열심을 내면 낼수록 내 안의 허무함이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함께 있을 때는 누구보다 밝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한 없이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에 나는 결국 하나님을 알게 되고 흔들리지 않는 반석 위에 내 삶의 의미를 세워가기 시작했으니, 지금으로서는 감사할 다름이다.
삶의 의미가 신앙 안에서 분명해지자 연구도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는 꽤 잘했다.
결국 교수님과 함께 논문을 썼고, 국내 학회에서 발표도 했다.
그렇게 8월 30일. 나는 2012년 상반기 학부생 대상 연구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과에서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최우수상을 받았던 나는 해외연수비용을 학교에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비행기값이 해결되고 나자 나는 2학기는 휴학을 했고, 그다음 해 캐나다로 교환학생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 교환학생은 내가 스스로 공대에 계속 남아있을 것인지를 판단할 최종 관문이었다.
학부연구생으로 승승장구하던, 바로 그 여름에 그를 만났다.
'하나님, 저 정말 신앙과 삶이 일치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성경대로 살아가고 싶어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어요.'
라고 고백하고,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어보셨다.
'정말?'
그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이 사람과 만날 것인가? 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다.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전하는 사람이 그의 삶의 모토였다.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이었다. 정말 성경대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문제였다.
그는 빚이 꽤 많았다.
이혼가정이었고, 집이 가난했으며
심지어 허리 수술 후, 장애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감사하게도 재활을 열심히 한 덕분에, 나를 만날 때는 장애판정을 벗어났다.)
그는 나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장애카드를 나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약점을 다 드러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너에게 꾸미고 싶지 않았어.'
그 모든 상황을 들은 22살의 황효선은 당황했다.
그와의 대화는 너무 좋았고, 그의 모습이 멋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그건 나에게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이제 막 카이스트에서 연구로 승승장구하던, 온갖 대학원에서 콜링이 와서 선택만 하면 되었던 나는..... 단지 마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과연 그와 만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성경을 계속 보는데, 그 어디에도 '결혼이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과 해야 해.' 라든가 '남자는 적어도 이 정도는 벌어야 해.'라는 조건들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구체적인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분명.. 나는 성경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삶의 지표를 정했는데... 그와의 만남을 결정하는 과정에 나의 모든 지표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 만난다는 건 앞으로 누리게 될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가 신학대학원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어 도망쳤던 것이다.
지나갈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큰일이 없다면... 아마 더 이상은 연락할 일이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마지막 편지를 받은 그 역시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이주가 지났을까.
엄마는 새벽기도에 간 후 나 혼자 있는 집에서 그날따라 유난히 단잠에 빠져있던 어느 날 아침.
기르고 있는 강아지가 방문 앞에서 유독 사납게 짖었다. 강아지의 울부짖음에 억지로 눈을 겨우 떴다.
그리고 모든 사고가 멈춰버렸다.
내 방은 …
빨갛고 노란, 선명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불이 났다.
덮고 있던 전기담요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스파크가 튀었는지, 그곳에서 시작된 불길이 이미 침대, 책장을 타고 활활 타고 있었다. 무언가로 덮을 수 있는 불도 아니었고, 물을 붓는다고 해서 꺼지지도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그냥 일어나서, 잠옷 차림 그대로 핸드폰과 강아지만 안고 뛰쳐나왔다.
옆집에 벨을 눌렀다.
"불이 났어요!!!!"
그렇게 아파트의 모든 주민들이 다 대피를 했다.
119를 불렀지만, 소방차가 들어와야 하는 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가 들어올 수가 없었다. 소방관이 도착해서 어떻게든 아파트 안에 있는 소화기로 꺼보려고 했지만 오래된 아파트에 소화전과 호스가 부식이 심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겨우 소방차가 들어왔지만, 도로 소화전 물이 공급되지 않아 작동이 되지 않았다.
결국 불이 점점 커지는 2시간 동안 발만 동동 구를 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그저 불이 번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서웠다.
불이 난 것도 무서웠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무서웠고,
모든 게 없어질까 봐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나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 덜덜 떨고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온 엄마가 딸이 저 위에 있다며 울고 불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걸 이웃들이 말렸고, 숨어있다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나는 엄마를 찾아 부둥켜안았다.
이 날의 화재는 뉴스에 나올 정도의 큰 이슈였고, 우리 집은 남는 것 하나 없이 전소되었다.
이날 우리에게는 입고 나온 잠옷, 그리고 핸드폰만 남았다.
나의 모든 멘탈이 흔들렸다.
그냥...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