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교사가 되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지?

by 쿠요

내가 지원했던 학교는 기독교 대안학교였다.


내가 믿는 기독교 역시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내 안에서 세상을 보는 많은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 시즌 즈음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으로 일반 학문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될까.'


나는 교사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었고, KAIST는 더더욱 교직이수가 되는 학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독교 학교 안에서도 비인가 대안학교를 찾아서 지원을 했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학교의 운영방침이 교육부에서 지정된 커리큘럼에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각 학교가 가지고 있는 비전과 방향성이 굉장히 중요했다. 어떤 시선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하는가가 결국 학교의 모든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들 중에는 자연친화학습을 위주로 하는 곳도 있고, 엘리트 코스를 위주로 하는 곳 등 특징들이 다양하다. 다만 비인가 대안학교이기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를 치러야 학력인정이 된다.


'다양한 학교들이 참 많았구나.'


학교라는 틀 안에서만 자라왔는 나에게 다양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운영되는 대안학교들을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특수한 환경의 교육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일반 학문들을 해석해서 가르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었다.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다. 정말로, 내가 가진 세계관으로 일반 학문들을 멋있게 가르쳐 볼 수 있는지.




천문학자를 하고 싶어 할 만큼 지구과학에 관심이 있었으니 과학교사로 왜 안 갔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과학교사는 지구과학만 가르치는 게 아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전부 다 가르쳐야 했다. 그중 난 생물이란 과목을 선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르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수학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수학은 하나의 공식인데 어떻게 세계관이 들어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로 내가 가진 세계관이 일반 학문들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가장 정형화되어 있을 것 같은 수학이란 학문의 영역마저도 분명 바꿔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호기로운 생각과 함께 수학교사가 되었다.


두근거리는 신입 교사의 시작이었다.



내가 간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곳이었다. 그중 내가 처음 지정받았던 곳은 중학교 2학년. 담임은 아니었고, 교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로 갔다. 처음 출근하는 날, 중학교 2학년에 대한 온갖 소문들을 다 듣고 갔던 터라 사실 긴장했다.


'중2는 눈빛부터 다르다던데...'


두려움을 가득 안고 교실 문을 열었다.


호기심 어린 눈들.

장난기 가득한 눈들.

관심 없는 척하지만 힐긋힐긋 보는 눈들.


'너희들이 앞으로 내가 수학을 가르쳐 줘야 하는 아이들이구나!'


두근거렸다.


이때 내 나이, 24살.

지금 생각해 보면 애가 애를 가르친 거다.



담임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담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만 생각하면 되니, 내심 마음의 부담은 좀 덜어졌었다.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은 결국 담임선생님의 역할이니, 책임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웠다.


그렇게 한 달이 좀 되었을 무렵.

갑자기 교장선생님께 호출이 왔다.


"선생님. 8학년(중2) 담임 선생님께서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담임을 해주셔야 할 듯합니다."


....?????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갑자기 담임이 되었다.

내 인생 첫 담임.

파란만장한 중2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겠다는 멋진 포부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던 건지 수업준비를 해서 지식을 가르치기도 바빴다. 거기에 사건 사고로 계속해서 불려 다니다 보니 어느새 중간고사였다. 담임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수학교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해보기도 전에 우선 일들을 해야 했고 아이들 앞에서는 소위 어른의 모습으로 여유로운 척 있어야 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고민을 수업에 녹여내지 못한 채 중간고사를 맞이했다.


'이 정도면... 너무 쉽지 않나? 이건 그냥 바로 풀 것 같은데..'


아이들이 수학을 얼마나 습득했는지 알기 어려웠던 나는 이 정도면 바로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버렸다. 그도 그럴게 아이들은 꽤나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고개도 끄덕였고 또 수업할 때는 곧잘 대답했으니, 당연히 조금만 응용을 해도 다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던 거다.


그렇게 첫 시험을 냈는데 웬걸, 평균이 40점이 나왔다. 그야말로 원성 대폭발이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아. 내가 쉽다고 너희한테 쉬운 게 아니구나...? 쉽다는 건 정말로 쉬워야 되는구나.'



가끔씩 카페로 찾아오는 제자들이 있다.


"그땐 내가 어렸어. 지금 나를 찾아오는 너희 나이보다 더 어렸으니까. 그러니 애가 애를 가르친 거지. 그걸 생각하면 미안해져. 지금이라면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너무 어렵게 가르쳤던 것 같아서."


사실이다.

첫 해에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몰랐다. 수학교사로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것과 담임교사로 삶을 가르쳐야 하는 것 중에서 나는 계속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의 최선은... 그저 너희들과 함께 있는 시간 최선을 다하자 뿐이었다.



중간고사를 통해 채점지에 비가 우수수 떨어지는... 원성과 원망을 한 몸에 받은 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가기 시작했다.


수학교사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으면, 적어도 내가 가르치고 있는 이 과목이 나에게 얼마나 매력적이고 멋진 과목인지를 보여주자.


담임교사로 어떻게 아이들을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잘 모르겠어도 곁에 있자.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가져가서 나눠주었다.

체육대회 때 아이들과 같이 뛰어다녔다.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를 했다.


그게 잘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 나에게 어떤 게 좋은 교사인지 기준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으니, 그저 나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그때 가르쳤던 아이들이... 가끔씩 카페에 놀러 와 인사를 하려고 들러주니, 그 정도면 나쁘진 않았던 걸까?



keyword
이전 13화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