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교사로 살아가던 삶은 꽤 다이나믹했다. 그도 그럴게 학교 안에서는 매 달 행사가 있었고, 행사를 바쁘게 쳐내다 보면 어느새 방학이 오기 마련이었다. 방학 때는 숨을 좀 고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방학 중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계속 돌아가게 되면서 생각보다 학교의 일이 굉장히 많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일이 많다는 건, 생각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있게 돌볼 시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단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니, 나는 그래도 잘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착각 속에 있던 어느 날, 진로상담 시간이었다.
나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학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플루트과 관현악단에 한창 빠져서 풀루리스트가 되어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꾸면서 학교가 끝나면 매번 연습실에 가서 악기 연습을 했다가 숨에 벅찬 폐활량을 이기지 못하고 '악기는 즐기는 것이지'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학급 안에서 다양한 행사들을 만들어 일을 저지르는 걸 좋아했다. 다 같이 축구장도 가고, 학급신문도 만들고, 야밤에 학교에서 귀신의 집을 하겠다 하고, 난타공연도 했다. 말 그대로 재밌어 보이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서 과학이 좋았고, 지구과학에 빠져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했으니.. 너희들은 꿈이 뭐야?라고 물어보는 진로상담의 시간이 은은히 기대되기도 했다.
너희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아무리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허무맹랑한 꿈이라도 꿀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진로상담표에 자신의 꿈들을 적어냈다. 의사. 디자이너. 요리사. 어딘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혹은 귀찮으니 대충 적어냈을 법한) 직업군들이 나왔다.
'역시.'
그렇게 아이들이 적어낸 종이를 보던 중 한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 회사원
회사원..? 어떤 회사인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는 그냥 회사원..?
당장 그 친구를 만나야 했다.
"꿈이 회사원이야? 어떤 회사원이니?"
"그냥 아무 데나요."
말문이 막혔다.
"음.. 왜 회사원을 장래희망으로 적었어?"
"그냥.. 안전하잖아요."
회사원이 왜 안전해? 요즘 현실을 알고 있니?라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맴돌았지만, 말하지 않았고 왜 그렇게 적었는지에 대해 끝까지 이유를 들어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그걸 딱히 찾고 싶지도 않고요. 되고 싶은 게 없는데 장래희망을 적으라는 건 어려워요."
그 말. 그 눈빛. 그 모든 게 마음이 아팠다. 한창 꿈을 꿔도 괜찮을 나이에 너는 어째서 너의 눈빛을 잃어버렸을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직업을 적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직업은 껍데기에 불과할 텐데. 직업이 아니더라도...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그것만이라도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
귀찮다는 듯 말하는 그 아이에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있지. 직업은 지금 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걸. 근데 선생님은 네가 직업보다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어.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 한 분야에서 집중하는 사람,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싶은 사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은 사람 등 네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먼저 고민해 보자. 그리고 그것에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직업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거야."
무슨 말인지 과연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뒤로, 그 아이는 내 말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잘 듣기 시작했다. 내적친밀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내가 내 일에 바빠 아이들의 상황을 잘 보지 못했구나.'
비록 이 아이들의 학창 시절에 나는 기억되지 못하는 선생님이 될지라도,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하나하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삶을 보여주는 것.
그런데 그러려면 나부터가 그 아이에게 했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했다.
'효선아. 그러는 너는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학생에게 했던 그 질문이 계속 나에게 남아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교사라는 일은 네가 살아가고 싶은 삶이야?'
교직이수를 한 상태도 아니었고, 수학을 좋아했지만 수학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수학을 가르치는 일은 아예 다른 일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쳐도 되는 것일까? 적어도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이해가 쉽게 잘 가르치는 수업스킬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교사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둘 다 없는 것 같았다.
수학강사로 과목을 잘 가르치는 사람도 아니고
교사로 아이들을 잘 품어주는 사람도 아닌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교육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수학교사로 계속 이 일을 하려면, 전문적으로 좀 더 많이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