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

by 최정식

바울은 아빠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바울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존재를 "아비들"이라고 한정 짓는다. 이것은 당시에 아비들이 주로 교훈과 훈계를 담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자녀는 보기 어려운 반면에,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자녀는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자녀 입장에서 엄마의 사랑은 쉽게 체감하지만 아빠의 사랑은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본다. 하지만 아빠는 상대적으로 자녀와 접촉하는 시간이 짧은 데다가, 엄마들의 요구에 따라 자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아빠가 적어도 자녀를 교훈하고 훈계하는 일만은 맡아주기를 바란다. 특히 자녀가 사춘기에 들어서면 더더욱 그런 요구가 커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빠가 막상 자녀를 교훈하고 훈계하려고 할 때, 오히려 그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아빠가 자녀를 훈계하는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 다윗의 아들 중에 압살롬의 동생인 아도니야가 있는데 후에 솔로몬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그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상 1:6)


다윗은 믿음에 관해서는 구약성경 중에 가장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가장 실패한 인물이다. 그의 아들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겁탈했고, 그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은 나중에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기도 했다. 다윗은 구체적으로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라고 자녀에게 묻고 때로는 "자녀를 섭섭하게도 하는 훈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비들은 어떻게 해야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교훈과 훈계를 할 수 있을까? 먼저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아야 한다. 에베소서에는 자녀들이 화를 나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바울의 비슷한 교훈이 적힌 골로새서 3장 2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빠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는데 자녀가 화를 내고 낙심하게 됐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낙심하다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열정이 사라지다(ἀθυμέω)"는 의미이다. 이 단어에서 아빠들이 한 실언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빠들이 훈계할 때 자주 쓰는 표현들 중에 "너는 그것밖에 못하니?, " "너는 커서 뭐가 될래?, " "제대로 좀 해봐!" 등이 있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자녀의 태도와 능력에 대한 비난이다. 그리고 모든 아빠들이 자녀를 훈계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내용이 아이러니하게도 "'열정'이 없다"는 것이다. 아빠는 자녀가 열정도 없고 능력도 없고 배우려는 태도도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자녀는 그런 지적 때문에 화가 나고 오히려 "하고 싶은 마음(열정)"이 더 사라진다. 아빠의 그러한 지적에 자녀는 "그럼, 아빠는?"하고 속으로 되물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자녀의 능력이나 태도를 지적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두 번째로 아빠가 자녀를 교훈과 훈계할 때 주의할 점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라떼는"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성경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뜻이다. 아빠들이 하는 흔한 실수는 자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빠가 네 나이 때는, " "아빠가 어렸을 때"는 이라고 말을 시작한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자녀의 귀는 막히고 아빠는 꼰대가 된다. 아빠의 경험과 지혜는 늘 한계가 있다. 때때로 아빠의 경험이 자녀에게 딱 맞는 교훈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아빠는 자신의 나이와 연륜을 무기 삼아 자녀를 교훈하지 말고, 성경의 교훈을 따라 교훈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하나는 성경의 가르침을 자녀에게 회초리처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자녀는 성경과 신앙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갖기 쉽다. 그러므로 아빠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아빠 자신이 성경 말씀에 자신을 먼저 비춰봐야 가능하다. 아빠가 먼저 성경을 통해서 깨달은 자신의 연약함을 나눌 때, 자녀는 아빠도 저렇게 가르침을 달게 받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아빠의 말을 듣는다.

세 번째로 아빠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할 때 주의할 점은 잠언 13장 24절에 기록되어 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근실히(diligently)"라는 단어는 "신속히(promptly)"와 "제대로(properly)"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아빠들이 자녀들을 훈계할 때 실패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 훈계가 간헐적이기 때문이다. 훈계의 효과는 신속함과 적확함 그리고 성실함에서 결정된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아빠가 곧바로 훈계하게 하지 않으면 자녀는 그것을 허용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 일에 관하여 훈계할 때 아빠의 훈계에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빠의 훈계는 "해당하는 행위"에 대한 적확성을 가져야 한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그동안 있었던 잘못을 몰아서 지적하면 안 된다. 다른 사안을 말하는 순간, 훈계는 잔소리로 변한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성실하게 자녀를 교훈하고 훈계해야 한다. 이 말은 잘못했을 때만 자녀를 앉혀놓고 교훈하지 말고, 평소에도 규칙적으로 자녀와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럴 때 비로소 자녀는 아빠가 아빠의 교훈과 훈계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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