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그 모임인 교회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마태복음 5장 13-16절을 흔히들 "빛과 소금"이라 제목을 단다. 아마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빛"이라는 한 글자 단어를 앞에 두는 것이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빛과 소금을 한자로 바꿔서 "광염"이라고 하거나 성경의 순서대로 "염광"으로 전환해서 많은 교회들이 이름을 따왔다. 그도 그럴 것이 본문이 병행적으로 소금과 빛에 대한 비유를 하고 있으니 그 순서가 바뀐다 한 들 큰 의미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소금의 비유를 빛의 비유에 앞서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게다가 예수님은 빛의 비유에서는 긍정적인(positive) 설명을 하신 반면 소금의 비유에서는 부정적인(negative)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심판의 메시지도 덧붙이셨다.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께서 소금을 빛보다 먼저 말씀하신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이것은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과 연관 지어 보면 이해가 간다. 사람들은 소금에 대해서는 맛을 보고 그 짠맛이 없으면 밖에 버린다. 사람들은 빛에 대해서는 등경 위에 두어서 집 안 모두를 비추게 한다. 결국 예수님은 "사람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하여 성도와 교회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신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교회는 사람들 혹은 세상 속으로 "소금의 방식"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소금의 방식이란 자신이 녹아 없어지는 방식이다. 형체는 없어지나 맛과 기능이 남는 방식이다. 이러할 때 사람들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세상은 그러한 교회를 빛으로 여겨서 등경 위에 두려고 할 것이다.
이 순서가 뒤바뀐 것이 한국교회가 급성장기에 범한 우이고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스스로"를 빛으로 여기고 빛으로 내세우고자 할 때 사람들은 거부한다. 자기 자랑을 하며 견고하게 자기 성을 쌓아가는 교회들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교회 건물은 어느덧 혐오와 불편함의 대명사가 되고, 교인들은 잘난 체하거나 자기들끼리만 행복한 이기적인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그러니 우리는 이 순서를 되찾아야 한다. 교회와 성도인 우리가 소금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를 낮춰 사람들 속에 녹아질 때, 세상이 우리를 높이며 빛이라 칭할 것이다. 교회여! 빛이 되려 하지 말고 소금이 되려 하라. 그리하면 세상이 우리를 빛이라 칭할 것이다. 그러니 소금이 빛보다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