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교훈적인 책이 아니다. 성경에는 착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이 등장한다. 의인의 수보다는 악인의 수가 항상 더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의 기대를 깨는 것은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의 삶이 불안전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겁쟁이 주인공도 있고, 부하의 아내를 취하는 욕심쟁이 왕이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傳記)들에는 그들의 실수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우리는 그런 영웅들을 보며 왜 저런 사람이 우리 시대에는 없을까 하고 아쉬워한다. 또한 영웅을 괴롭히는 악인을 대할 때면, 우리 주위에 누군가를 떠올린다. ‘이때도 이런 사람이 있었네…’ 생각하며. 이러한 우리의 태도는 영웅은 더더욱 완벽하게 그리고 악인은 더더욱 악하게 만든다. 이처럼 우리의 해석학적 유혹은 주인공의 잘못을 변호하려 하고 악인의 잘됨을 더욱 시기하게 만든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어느덧 영웅 편에 서 있다. 그래서 영웅이 승리하면 마치 내가 승리한 것처럼 기뻐하고, 영웅의 치부는 나의 치부와 마찬가지니 숨기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성경도 읽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내가 편들고 싶은 완벽한 영웅이 없다. 그러니 성경은 흥미진진한 책도, 교훈이 가득한 책도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어찌 보면 한심스러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아담은 우리를 고생스럽게 만든 사람일 뿐이요, 가인은 자기 성질 하나 못 다스리고 동생을 죽인 한심한 놈이다. 아브라함은 사서 고생한 사람이자 겁쟁이요, 다윗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군주로 탄핵 대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인가? 성경을 읽는 방법에는 “나는”과 “나도”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나는”이란 “나는 그렇지 않다.”라는 식의 태도요, “나도”란 “나도 그렇다.”는 태도이다. 성경이 아담의 죄를 상세히 기록하고 가인의 살인 현장을 사실 보도하고, 다윗의 침실을 폭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성경은 나의 죄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우리가 정죄하는 성경 인물들의 죄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 우리 죄를 밝히 드러내는 빛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저 죄인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하는 바리새인을 보며 이렇게 자복해야 한다.
“나도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주님!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