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식 Jul 04. 2023

"개척교회" 아니고 "새 교회"

나는 "개척교회"라는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교회 헌법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새롭게 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불모지에 정착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붙여지지 않았을까 싶다.

   "교회 개척" 사역을 영어로는 고린도전서 3장 6절에 나오는 바울의 표현을 빌려서 "Church planti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문자대로 국어로 번역하면 "교회 심기"가 되어서 이상하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표현에서 따오면 "교회 설립"이 된다. 그러니 "교회개척사역"은 "교회설립사역"으로 일컫는 것이 정의로 보나 국어표현으로 보나 더 맞다.  그렇다면 그렇게 설립된 교회를 뭐라고 불어야 할까? 개척한 교회는 "개척 교회"라고 하면 되는데 설립된 교회를 "설립 교회"라고 하면 새롭게 시작해서 고전분투하고 있는 교회를 특별히 지칭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외로 쉽고 알맞은 용어가 있다. 바로 "새 교회"이다. 영어로는 "a new church"가 되는 것이다. "개척교회"를 "새 교회"라고 부르고 "교회개척사역"을 "새 교회 설립사역"이라고 부르면 그 개념이 분명하고 성경이나 교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사실 교회를 분류할 때 "개척교회"라는 이름은 그 대조되는 개념이 없다. 본래 개척이라는 말은 미국 "서부 개척"처럼 기존에 전혀 사람도 없고 사람이 살기도 어려운 곳에 개척자(pioneer)가 가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살만한 곳으로 만들 때 쓰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 나라 상황에서 문자적인 "개척교회"를 찾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이미 개척교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장로교 교회헌법에서는 교회를 당회가 조직된 조직교회와 아직 당회가 없는 미조직교회로 나눈다. 통상적으로는 교회의 재정상태를 따라서는 자립교회와 미자립교회로 나누기도 한다. 쉽게는 그 규모에 따라 큰 교회와 작은 교회라고 부른다. 우리가 소위 "개척교회"라고 부를 때는 "작은 교회, 미자립교회, 미조직교회" 이 모든 걸 다 포함하고 거기에 여전히 고생하는 교회라는 이미지도 더하는 것 같다.

   그런데 개척교회는 언제까지 개척교회일까? 생겨난지 몇년까지 개척교회일까? 재정상태가 어느 정도 되어야 개척교회를 벗어날까? 개척교회라는 단어는 이제 막 시작한 교회 입장에서 스스로를 낮춰부르기에 좋을 수 있고, 재정적으로 그 교회를 후원하는 교회가 후원을 동원하기에도 좋게 이용될 수 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보면 "개척교회" 스스로 자신들을 무엇인가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하다는 여길 수 있으니 그리 권할 만한 이름은 아닌 것 같다. 고생이라는 단어로 점철된 이미지를 주는 것은 교회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그러한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오히려 두려움만 주게 된다.  

   그러니 "개척교회"가 아니고 "새 교회"라는 용어를 쓰자. 얼마 전에 한 제자가 나에게 물었다. "목사님은 이미 교회가 많이 있는데 왜 새로 교회를 시작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지금도 세상에 사람들이 많은데 왜 계속해서 사람들이 태어나지?" 이 땅에 있는 지역 교회(가시적교회, local church)는 모두 한시적이다. 한국 교회 역사가 더해지면서 이제 100년 넘은 교회도 많지만 그 사이에 있었다가 없어진 교회들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다. 이 땅에 교회들이 한시적이라는 것은 새 교회들이 계속 생겨나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화율이 말하기도 하고 교회수를 말하기도 하면서 교회가 계속해서 생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새 시대와 새로운 세대는 새 교회를 필요로 한다. 교회의 본질이 유지하면서도 새 시대와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 새 교회를 계속해서 세워야 한다. 그러니 "새 교회 설립 사역"은 레드오션이 아니다. 새 사람들이 계속해서 태어나고 세대가 변하고 있으니 그들을 위한 "새 교회"는 항상 블루오션이다. 이것은 기성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성교회는 기성교회로서의 역할을 하고 "새 교회"는 새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성교회는 새 교회를 설립하는 사역에 적극동참해서 자신들보다 더 훌륭한 새 교회들이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

   소금교회는 시작한지 3년이 되지 않았으니 여전히 "새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5년 정도 되면 그 명칭을 벗고 "소금교회"라고만 불려도 충분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설교 본문 정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