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녀 이상을 가진 부모들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셋째부터는 아이가 마냥 이쁘다. 셋째의 출산이 다가오자 아내가 걱정이 많았다. 29개월인 첫 딸아이의 재롱이 한창 예쁠 때였다. 아내는 셋째가 태어나면 둘째에게 신경을 덜 쓰게 될 테니 미안하다며서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셋째가 태어난 순간 아내는 언제 그런 걱정이 있었냐는 듯이 막내가 주는 기쁨에 푹 빠져 지냈다. 그때 나는 첫째는 외할머니 몫, 둘째는 아빠 몫 그리고 막내는 엄마 몫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첫째 아이를 키우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 처음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기대가 커서 그렇다. 둘째를 키울 때도 실수 종종 한다. 첫째와 비교가 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런데 셋째 즘 되면 부모는 이런 것들에서 좀 자유로워지면서 마냥 이쁘다고 느낀다. 언젠가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성경의 표현이 셋째를 갖고 나니 좀 이해가 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셋째가 사춘기를 겪을 때 부모인 우리는 상대적으로 셋째를 잘 몰랐다는 것을 확인했다. 뭐를 해도 이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다른 한편으로 뭐를 하는지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셋째는 우리와 언니, 오빠 사이를 지켜보면서 엄마아빠가 뭘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언니와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몸으로 체득한 것 같았다. 그래서 착한 아이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오빠와도 언니와도 다르게 사춘기를 겪는 셋째를 보면서 우리가 셋째를 잘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이런 내 모습을 반성하면서 셋째의 장점들을 셋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셋째에게 첫 번째 장점으로 "큰 목소리(loud voice)"를 말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 드라마(연극)를 열심히 한다. 6학년 때는 성탄에 대한 연극을 12월에 발표한다. 7학년부터는 매 홀수 학년(7,9,11,13학년)에 드라마를 연습해서 발표한다. 셋째는 올해 마친 11학년 드라마까지 드라마를 할 때마다 매번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에는 마침내 여우조연상까지 받아서 부모인 우리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줬다. 셋째의 연기에 대한 칭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전달력이다. 셋째가 목소리가 크고 딕션(diction)이 좋기 때문이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조용조용한 셋째지만 드라마를 할 때는 에너지가 넘친다. 나도 목소리가 큰 편이지만 셋째의 큰 목소리는 엄마한테서 온 것이다. 나는 아내의 큰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세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확인했다. 세 아이들은 항상 엄마가 책 읽어 주는 것을 선호했다. 또 한 번은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확인했다. 아내의 큰 목소리는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셋째에게 이 이야기를 하며 큰 목소리가 재능(gift)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나는 셋째의 큰 목소리를 태어나자마자 알아챘다. 셋째의 울음소리는 첫째나 둘째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커서 성악을 해야겠다고 아내한테 말하기도 했다.
셋째가 가진 두 번째 장점은 다른 사람들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no fear of people)는 것이다. 나는 MBTI에서 E가 강한 I로 분류된다. 아내는 나서지 않는 E다. 우리 부부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남들 앞에서 노래하거나 발표를 하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도 무대에 서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반면에 셋째는 무대를 즐긴다. 아주 어렸을 때도 손님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주저함 없이 했다. 우리 부부는 저런 성격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아심과 부러움으로 셋째의 재롱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아이가 크면서 더 이상 남들 앞에서 뭘 해보라고 요청할 수가 없지만 연극 같은 무대가 주어지면 열정적으로 연기를 한다. 다만 연기만이 아니라 셋째에게 지리와 종교학을 가르친 한 선생님이 셋째가 가진 토론 능력을 높게 평가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편을 나눠 토론회를 열었는데 셋째가 논리면에서도 스피치(speech) 면에서도 탁월했다는 평가였다. 나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점이 여러 부분에 활용된다고 생각한다.
셋째가 가진 세 번째 장점은 창의성(creativity)이다. 셋째가 가진 창의성은 자유분방함과 연결이 되어 있다. 셋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싫어한다. 어느 날 보니 양말을 짝짝으로 신고 다니고 있었다. 교복을 입었을 때는 정해진 색깔의 양말만 신어야 하니 할 수 없지만 그 밖에 시간에는 양말을 꼭 짝짝으로 신는다. 셋째가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꼭 가는 곳이 부평지하상가다. 하루를 정하고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데 그곳에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한다. 셋째의 패션은 귀엽거나 아기자기하지 않다. 과감하고 걸크러쉬 하다. 나는 셋째의 코디를 볼 때마다 그 조합에 놀라곤 한다. 아내를 만나서 비로소 옷을 제대로 입기 시작한 내 입장에서 셋째의 패션감각은 부러울 따름이다. 셋째의 창의성은 글쓰기와 그림에서 더욱 빛을 보인다. 셋째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영국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소설 쓰기를 숙제로 내준다. 셋째가 7학년 때 일이다. 선생님은 셋째가 쓴 이야기가 정말 창의적이고 재미있다면서 지나가던 나를 세워놓고 셋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들도 셋째가 쓴 이야기를 제일 재밌어했단다. 이번 11학년 드라마를 했으니 13학년 드라마가 남았다. 13학년 학생들은 자신들이 남녀 학생 한 명씩 해서 두 명을 감독을 뽑는다. 뽑힌 감독들은 함께 시나리오를 써야 하고 드라마 감독도 해야 한다. 2년 후의 일이지만 친구들 사이에는 벌써부터 누가 감독이 될 것이냐 논쟁이 벌어졌단다. 셋째가 감독을 하는 게 좋을지 주인공을 해야 좋은지를 놓고 말이다.
셋째가 가진 네 번째 장점은 키가 크다(tall height)는 것이다. 15살인 셋째의 현재 키는 165cm 정도다. 얼마 전에 정형외과에 갔었는데 친구인 의사 말이 아직도 성장판이 열려 있어서 좀 더 클 거란다. 내심 부모로서 170cm 까지는 커 주길 기대하고 있다. 170cm는 요즘 아이들 평균 키에 비하면 평균일 수 있지만 우리 가족에서는 엄청 큰 키다. 아빠인 내가 꿈에 그리던 키다. 키가 큰 것이 장점이라고 해서 키가 작은 것이 단점은 아니다.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큰 키가 할 수 있는 것을 작은 키가 못하는 것이 많은 반면 작은 키가 하는 것은 큰 키가 대부분 할 수 있다. 다만 불편할 따름이다. 셋째는 키만 큰 것이 아닐 상대적으로 하체가 길다. 그래서 다양한 옷을 소화할 수 있고 훨씬 더 패션니스타(fashionista)처럼 보인다. 나는 얼마 전에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보았다. 창의적이고 미술도 잘하는데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으니 모델도 해보고 패션디자이너도 해보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셋째의 답변은 "엥? 왜?"였다.
셋째가 가진 다섯 번째 장점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being considerate)이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면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길러진 면이 강한 것 같다. 셋째는 다섯 살 위인 오빠와도, 세 살 위인 언니와도 사이가 좋다. 오빠는 셋째를 잘 돌보고 언니는 셋째와 친구처럼 잘 지낸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셋째 스스로의 역할이 크다. 셋째는 오빠언니뿐만 아니라 엄마아빠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고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잘 안다. 어쩌면 막내로 자라면서 눈치가 길러졌다고 할 수 있지만 단순히 눈치나 처세술로 폄하할 수 없는 능력이 셋째에게는 있다. 내가 이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셋째는 눈치가 있지만 눈치를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실행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이런 면에서 셋째는 당당한 모습을 가졌다. 그럼에도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 있다.
아빠는 이런 내용들을 흥분해서 말했지만 셋째는 "응!" 하고 시크하게 답했다. 하지만 수화기에서 들리는 시크한 답 너머로 사슴 같은 셋째의 눈이 한결 밝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빠는 너를 잘 알아!"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빠는 너를 이만큼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음에는 셋째를 감동시킬 만큼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고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