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창 시절에 학원을 다닌 적이 없습니다. 1등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할 때, 저는 학원과 과외 수업을 받는 친구에게 자주 밀렸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 그 시절을 되짚어보니 학원, 과외 문제라기보다는 그 친구가 공부에 재능이 있었고, 저는 그냥 따라가기에 급급한 학생이었습니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당연하게 학습지를 시켰고, 아이들은 하교 후에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특하기보다는 숨이 막힙니다.
'학원에서 저렇게 숙제를 많이 내주면, 언제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아이들 나이가 어린데 왜 저렇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 거지?'
'애들이 세뇌를 당했나? 쟤네들 세뇌가 풀리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이상한 거 아닌가?'
저는 결국 아이들을 불러놓고 폭탄선언을 합니다.
"얘들아, 학원에 꼭 다닐 필요 없어. 안 다녀도 돼."
"차라리 우리 제주도 한 달 살이하러 내려가자. 한 달 동안 도서관 투어하면서 책을 읽자."
아이들은 제 말에 '엄마, 또 시작이네. 아휴'
시큰둥하게 반응합니다. 저는 민망해서 딴짓을합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부모님의 불화로 마음이 힘들었고 공부를 그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새벽 1시, 2시까지 공부하는 원동력이 '불행'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게 갖춰져 있고, 행복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아이들이 학원숙제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타는 엄마는 아마 이 지구상에 저밖에 없을지 모릅니다.
사실 아이들이 뚜렷한 목적과 목표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노력도 대견한 일입니다.
산에 올라갈 때 모든 사람들이 목표를 갖고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요. 어쩌면 큰 목표 없어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 평범함이 더 특별한 재능일지도 모릅니다.
착실한 한 걸음 한 걸음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14년째 초보엄마인 저는 오늘도 아이들의 눈치만 살핍니다.
"얘들아, 공부보다 중요한 건 공부를 대하는 너희들의 감정이야"
아기곰 삼 남매는 '엄마 연설이 언제 끝나나' 이런 표정으로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엄마곰의 말을 흘려듣고 있네요.
엄마에게 중요한 건 아이들의 감정입니다. 이미 어른이 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성적은 잊히지만 감정은 영원히 기억된다는 걸 말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 보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10분 일찍학교로 내딛는 부지런한 발걸음.학교 끝나고 약속한 시간에 학원으로 내딛는 발걸음.
엄마가 숙제는 내일로 미루고 그냥 자라고 속삭여도 선생님과 약속한 그 힘든과제를기어이 해내는 작은 자신의 커다란 힘.
학원 수업 사이에 엄마아빠 없이 혼자 국숫집에 들러서 자신을 위한 메뉴를 고르고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에 다음 수업에 들어가는 자기 자신.
공부가 힘들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가슴이 답답한 어느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친구들과 미친 듯이 축구를 하는 자기 자신.
이렇게 자신의 생명력이 자기 자신을 이끌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 일체를 해내는 주인공인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엄마는 우리 집 미니언들이 지금의 종종 발걸음이 자기 자신을 향한 여행임을 잊지 말고, 스스로 정한 약속만큼은 지켜내는, 위대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