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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Nov 09. 2024

8화: 주위 모든 것이 작아 보이는 수라의 늪 1

여왕은 위대했다. 그 굳게 다문 입술, 사람들을 바라보는 자비로운 눈빛. 폐부를 찌르는 깊은 음성은 누구나 여왕의 앞에서 머리를 저절로 숙이게 만들었다. 차분했지만 차갑지 않았고 그녀의 말, 눈빛, 행동 하나하나를 인의 숲에서 불어오는 평온한 바람이 실어 날랐다. 결국 그녀의 마음은 상대방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인의 숲에 도달하였다. 여왕을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 속에 숨겨진 인의 숲을 발견하였다. 그렇게 그 시대는 평온을 찾았다. 만약 내가 신화 속으로 들어가 그 여왕을 만난다면 나도 나의 인의 숲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왕이 후계자를 출산했다는 만고의 북소리에 모든 백성은 기뻐하였다. 혼란에 둘러싸인 왕좌는 피에 물들고, 백성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끌려 나가서 죽고 죽이는 끝없는 싸움을 해야만 했다. 위대한 여왕과 그의 아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모두의 평안인가. 

위대한 여왕이지만, 아들 율의 어머니는 비참했다. 

여왕이 출산하는 그 시간, 왕의 숲인 인의 숲은 침묵했다. 아니, 침묵이 아니다. 인의 숲은 그 어느 때보다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역대 그 어떤 왕의 탄생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수라의 숲에 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모든 짐승들이 울면서 시커먼 밤하늘의 모든 별이 동시에 숨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애써 모른 척하고, 자신의 두려움을 회피했다.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은 끝없이 하늘을 살피고 밤이 되면 문을 여러 번 걸어 잠갔다.


여왕은 강보에 싸인 아이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져보았다. 얼굴이 희고 말랑한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밖으로 걸어 나온 여왕은 혼자 남아 별들을 바라본다. 잠시 후에 눈을 감고 깊은숨을 내쉰다. 눈물이 흐르고 입술이 떨려왔지만, 흔들리는 마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자신을 달래어 본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인의 숲을 향해 차분히 걸어간다. 저 멀리 우주의 모든 별이 인의 숲으로 떨어지고, 태양과 달에 둘러싸인 우주는 인의 숲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 여왕은 가만히 서서 숲을 바라본다. 인의 숲이 멈춘다. 여왕이 손을 내민다. 바람이 도착한다.


아기 율은 어머니에게 매달리고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이 좋았지만 여왕보다도 키가 커지면서 더 이상 어머니에게 매달릴 수 없었다. 여왕은 격무에 시달렸고, 어머니와 거리를 두고 서야 하는 율은 무척 외로웠다. 율의 외로움은 차가움과 침묵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태자인 율의 생각을 알 수 없었고, 그 앞에 서면 두려움에 고개를 깊이 숙였다. 율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눈빛에 온몸에 흐르는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 


여왕과 율의 가마가 먼 길을 떠난다. 백성들은 "여왕폐하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태자인 율의 가마가 지나갈 때는 모두 침묵하며 엎드려 있었다. 율은 백성들이 자신의 가마가 지나갈 때 대지에 머리를 더 조아리면서 자신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율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여왕에 대한 그들의  존경과 사랑, 자신에 대한 침묵과 멸시를 하나하나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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