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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tro May 28. 2022

테니스 코트 관찰기 1  

  현재 살고 있는 미국 동네에는 테니스 클럽뿐만 아니라 공공시설 코트도 많다.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나의 체력을 만들어보고자, 테니스 클럽에 가입하여 많게는 주 3회, 적게는 주 1회 정도 테니스를 한다.  

  에너지 소모가 꽤 많은 운동이라 한참 공을 치고 줍고 하다 보면 중간중간 충분히 쉬어주어야 한다. 해가 내려앉을 듯이 뜨겁다가도 훅 부는 바람 한번 맞고 반 병 가량의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 라켓을 잡을 힘이 생긴다. 휴식 시간에는 자연스레 다른 코트의 회원들도 보인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오전 시간대에는 연배가 60대 이상 되어 보이는 남녀 어르신들이나 나와 연배가 비슷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온 것 같은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그날 역시 잠깐 물을 마시며 쉬느라 벤치에 앉아있을 때였다.

  저 멀리 클럽 출입구에서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이 커다란 짐을 어깨에 얹고 오는 것이 보였다. 회색의 그 물체는, 크기는 여행 캐리어만 하지만 여자 어른 혼자서 어깨에 올리고 올 정도이니 그만큼의 무게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심지어 한쪽 어깨에는 테니스 라켓 가방을 들고 있었고, 마치 묵언 수행을 하는 수행자처럼 묵묵히 천천히 그 짐을 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지?'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므로, 계속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테니스 코트에서 보기에는 꽤나 생소한 물건이었고, 부피에 비해 무거 워보이 지는 않았기에 참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그녀가 지근거리에 도착할 때 즈음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아! 그것은 다름 아닌 유아용 소파였다. (그림 참조) 

   

[P*ttery barn Kids sofa]


  소파를 거꾸로 뒤집어서, 모자처럼 이고 오던 그녀. 팔걸이를 양 어깨 위에 올리고 엉덩이가 닿는 쿠션은 머리에 얹어서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이 짐을 옮기실 때 머리에 이고 옮기시던 그 모습과 정말 흡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여느 미국인들처럼 'Good morning' 하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 그녀에게 무게를 선사하는 짐(?)은 소파뿐만이 아니었다. 왼쪽 다리에는 4세 남짓 되어 보이는 금발 곱슬머리의 여자아이가 한 손에는 곰인형을 안은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는 잠에서 막 깬 듯 잠옷을 입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오직 운동을 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유아용 소파를 이고 어린아이를 끌고 오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드디어 코트에 도착한 그녀는, 아이가 공을 맞지 않을 수 있는 가시권에 소파를 두고, 아이를 앉혔다. 그리고 바로 테니스를 시작했다. 


  사실 엄마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운동할 체력조차 남아있지 않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집-직장-육아를 병행하면서 남편이 운동하라고 채근할 때면, '운동할 시간에 잠을 더 자겠어.'라고 목청을 높였었으니까. 그러나 그때의 내가 지금 4세 아이를 끌고 운동하러 기어이 나오고 마는 저 엄마를 본다면 어땠을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가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입을 운동복이 마땅치 않아서'라는 온갖 이유는 그녀에게는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5분 남짓한 휴식 시간 동안 이 장면은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처럼 시원하게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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