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만난 몬테소리 일상영역
싱크대에 물방울이 톡톡 튀며 반짝인다. 둘째는 바닥에 놓인 오이를 싱크대로 올리고, 첫째는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군 뒤 껍질을 문질러 닦는다. 싱크대가 높아 발판을 끌어다 디딘 뒷모습이 사랑스러워 사진으로 담았다.
무게가 묵직한 오이를 쟁반 위로 옮기는 작은 손길은 조심스럽다. 두 아이는 산처럼 쌓인 오이 앞에 나란히 앉아 껍질을 벗긴다. 껍질이 벗겨진 오이를 들어 올려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벗겨낸 껍질은 어느새 장난감이 되어 양손 가득 움켜쥔다. 서로에게 “몇 개나 했어?” 묻고, “이렇게 해야 더 잘 돼”라며 훈수도 둔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두 아이의 웃음과 목소리가 여름 주방을 가득 채운다.
나는 그 옆에서 양념을 준비한다. 언제부턴가 오이소박이는 아이들과 함께 담그는 것이 당연해졌다. 몬테소리 철학에서 말하는 ‘준비된 환경’이란, 아이가 스스로 시도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과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 역시 그 환경의 일부다. 아이 손에 맞는 도구를 준비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필요한 순간에만 조심스레 개입하는 마음가짐까지 포함된다. 나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도 당연히 적용했다.
오이는 온 가족이 마트에서 함께 골랐다. 싱싱하게 빛나는 제철 오이를 보고, 모두가 “이거 사자!”라고 입을 모았다. 오이 50개라는 제법 큰 양이었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할 거라는 걸 알았기에 부담 없이 구입했다. 뿐만 아니다. 오이 50개를 담을 김치통을 고르고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오이소박이를 함께 담그는 이 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 오래 남기를 바란다. 그날 부엌에 가득했던 오이 향, 껍질을 벗기며 나누던 농담과 웃음소리, 따뜻하고 즐거웠던 경험까지도. 음식은 금세 사라져도,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이 부엌을 떠나더라도, 여름 주방에서 함께 웃던 오늘이 기억 속에서 여전히 반짝이길 바란다.
25년 6월 8일 일요일. 나의 사랑스러운 두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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