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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Dec 15. 2021

야옹과 꼬꼬

쉼표 같은 언어


아침에 일어나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딸과 남편은 이렇게 아침 인사를 한다.

"야옹"                                                                                                                                                                                                                           


"꼬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쪽이 야옹,하면 다른 한 쪽은 꼬꼬, 혹은 같은 야옹,으로 화답한다. 보통 이런 말하기 방식은 젊은 아빠가 어린 딸과 놀아주면서 나오는 의성어지만, 우리 집에서 이 대화는 우리 나이로 스물여섯 살 먹은 딸과 쉰다섯 살 먹은 남편의 아침인사다. 남편은 야옹과 꼬꼬를 자연의 소리, 자연 언어라고 부른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내려와 있다.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다가 1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금방 되지 않는 시대이고, 된다 하더라도 언제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집에 내려와서 준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다.


딸은 아침에 남편보다 일찍 나가서 공부를 시작한다. 점심 먹고 공부하고 저녁 먹고 공부를 해서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일주일에 6일은 그렇게 보내고 일요일 하루는 쉰다.


대학 때 해 봤던 과목은 그럭저럭 따라가지만 처음 해 보는 과목은 힘들다고 한다. 강의를 들을 때는 알겠는데 혼자 문제를 풀 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라고도 한다. 어느 날은 두통을 호소하고 어느 날은 소화가 안 된다고 한다. 어느 날은 계획대로 진도가 안 나간다고 조급해한다.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아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고도 한다.


"무슨 일이든 쉬운 일은 없어.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네가 인턴 생활을 해 봐서 알겠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돈 버는 일은 더 어려워. 네가 선택한 길인데 좀 더 참고 될 때까지 해 봐야지."


이런 말들은 딸에게 아무런 위로도 위안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저녁 먹고 같이 산책하자고 했다. 걸으면서 풍경도 보고 머리도 식히고 운동도 되고.

그렇게 우리는 저녁 먹고 1시간 정도 매일같이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저녁 산책길에서는 가는 곳마다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편의점 앞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회색고양이는 고등어 고양이로 부른다. 등에 난 털 모양이 고등어를 닮았다고 딸이 붙여준 이름이다. 딸은 고등어 고양이를 볼 떄마다 만지고 싶어 하지만 고양이는 여간해서는 손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요즘은 고등어 고양이가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뚱뚱해져 있다. 편의점을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먹이를 너무 많이 주는 모양이다.

공터에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 새끼들은 뛰어 다니며 놀고 어미는 근처에서 가만히 앉아 새끼들을 지켜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끼  한 마리가 안 보이더니  다음에는 다른 새끼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공터 근처에서 폼 잡고 다니던 덩치 큰 고양이가 새끼를 해치지 않았을까,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 걱정을 한다.


동네 공원은 길고양이들의 낙원이다. 원래 고양이들은 혼자 다니고 혼자 사는 습성이 있다는데 동네 공원에는 고양이들이 많다. 더구나 아픈 고양이도 보살핌을 받고 있다. 고양이 집사를 자처하는 한 친절한 아주머니가 항상 고양이 사료를 여기저기에 갖다 놓고 돌봐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원을 지날 때마다 보면 노란 고양이 검은 고양이 회색 고양이 할 거 없이 동네 고양이들이 모두 모여 사료를 먹고 있다.


교회 근처에도 고양이가 보인다. 아주 어리지 않은 그렇다고 다 크지도 않은 청소년 시기를 지나고 있는 고양이 같다. 가까이 가서 부르면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아난다.


딸은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야옹"거리면서 만져 보거나 고양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어릴 때 시골집에서 고양이와 같이 뒹굴며 잠도 함께 잤다는 남편도 길고양이를 볼 때마다 야옹거린다. 저녁 산책을 하면서 딸과 남편은 길고양이들과 야옹거리며 하루치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머릿속에 들어찬 생각도 잠시 비워 낸다.


딸과 남편이 아침 인사로 나누는 야옹과 꼬꼬는 어쩌면 남편의 표현대로 자연의 언어, 자연의 소리인지도 모른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이루고 싶은 소망과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취업 준비 기간에 대한 망연함, 같은 것들을 잠깐이라도 잊고, 그 자리를 쉼표 같은 언어로 채우는 것, 잠시 머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동심의 언어 같은 자연의 소리로 마음에 여유를 주는 것.


그렇게 딸은 하루하루 버틸 힘을 충전하고 있다. 그렇게 남편은 쉼의 자리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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