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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May 29. 2022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장미의 계절

우리 동네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노란색으로 페인트칠한 담장 위에 빨간 장미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한 송이가 아니고 여러 송이가 때론 무리 지어 피어 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색 잎들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빨간 장미는 그대로가 그림입니다. 해마다 오월이면 노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빨간 장미는 지나다니는 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별일 없었는지 위로를 건네는 것 같습니다.


빨간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이라는데 뿌리로부터 줄기를 따라 잎을 지어내며 쌓은 내공으로, 따뜻해진 대지의 입김으로, 찬란해진 햇빛의 힘을 받아 온 힘을 다해 열렬하게 색을 고르고 뽑아낸 것 같습니다. 오월의 햇살 아래 원형질 그대로의 색을 만들어낸 빨간 장미를 보면서 나이 들어서 사는 삶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적별돌 담장 위에 노란 장미가 활짝 피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집밥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 주인이 마당 있는 넓은 집을 사서 식당으로 꾸몄는데 맛깔스러운 음식만큼 꽃을 가꾸는 데도 열성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빨간 담장을 배경으로 핀 노란 장미는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노란 장미의 꽃말은 우정과 영원한 사랑입니다. 장미의 노란 빛깔은 편안하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오래된 친구와의 우정처럼 무심한 듯 배려하면서 오랜 세월 함께 한 그런 사람들이 생각나는 노란 장미입니다.


식당 집 울타리 사이사이에 하얀 장미가 활짝 피었습니다. 흰 장미의 꽃말은 순결함, 청순함입니다. 하얀색 꽃잎들모여서 모양을 이루어 한 송이 장미꽃이 되었습니다.  


흰색은 언제 보아도 깨끗하고 청초해 보입니다.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고 무엇이든지 빨아들일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태초 이전의 빛깔 같습니다. 하얀 장미도 그렇습니다. 순진하고 무구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 혹은 태초의 나를 만나는 빛깔입니다.


활짝 피었던 장미는 뜨거운 태양에 지치거나 바람에 날리거나 혹은 발화의 절정을 지나서 시들거나 낙화합니다. 피고 지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숙명인가 봅니다. 꽃봉오리의 상태를 지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존재를 만들어내고 활짝, 생명의 빛을 발하다가 낙화할 때는 한 잎 한 잎 떨어져 내렸을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꽃잎들이 모여 한 송이 장미로 불려 살다가 하나씩 꽃잎으로 떨어져 내린 장미 꽃잎을 보니 함께 모여 살던 가족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시들고 떨어지고 흔적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애잔하고 슬픕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장맛비를 맞고 무더위를 거쳐 장미의 줄기는 한 뼘씩 자랄 테고 이파리는 진초록으로 단단해질 것입니다. 찬바람이 불면 성장을 멈추고 지독한 추위가 오면 살아남기 위해 안으로 스며들면서 어려움을 견뎌낼 겁니다.


이듬해 오월이 오면 그동안 모아 두었던 에너지를  힘껏 발산해 새로운 장미로 피어날 테지요. 그게 장미가 살아내면서 꽃을 피우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월의 끝자락에서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합니다. 골목골목 장미가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모양을 살펴봅니다. 향기를 맡아봅니다. 잔잔하게 코 끝으로 오월의 봄이 스며듭니다.

담장 위로 울타리 밖으로 고개를 내민 장미를 통해 이웃들의  인사를 받습니다.


남편과 함께 작년에 장미 세 그루를 우리 땅 옆 길가에 심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그루는 죽고 두 그루는 살아 남아 꽃을 피웠습니다. 어린 장미가 이사 와서 적응하고 한겨울을 버텨 꽃을 피워 낸 게 대견합니다.


어린 장미가 뜨거운 여름을 견디고 추운 겨울을 참아내며 조금씩 성장하기를 잘 살피고 바라봐 주면서 응원합니다. 아직 어리고 작지만 빨갛게 피어 난 장미도 주황빛으로 피어 난 장미도 이웃들과 밝은 빛과 향기를 나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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