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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Jan 10. 2022

런던에서 한 달 살기, 추억 속으로 여행

동생이 보내온 카드 한 장

동생이 매년 보내온 카드들


런던 카드 한 통 왔다. 런던에 사는 남동생이 보낸 새해 연하장이었다.

언제부터인 우리에게는 사라진 풍습이 되어서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가고 있는 신년 카드를 받아서 종이봉투를 뜯고 카드에 쓰인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리고 매년 이맘때쯤 카드를 보내주는 동생이 고맙다. 시간을 들여 카드를 만들고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손편지를 썼을 그 공들임이 더없이 값지다. 만나지 못해서 그립고 전화나 문자로만 주고받던 한 해 동안의 일들을 추억하면서 손으로 쓴 편지에는 인쇄된 글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정이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청록색 봉투에 담긴 카드 앞장에는 동생네 가족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다섯 명의 가족이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한 사진들로 보고 있으면 입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단란한 모습이다.


동생네 가족은 어느 햇빛 좋은 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골라 가족사진 찍는 날을 즐겼을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런던 브리지 근처 거나 템즈 강 건너 오피스 빌딩이 있는 번화가 거나 그런 곳에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 주면서  놀이 삼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 가장 잘 나온 사진들을 골라 카드를 만들고 한국에 있는 그리운 가족들에게 손편지를 쓰고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사고 카드를 부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카드는 한 해를 건너 새해를 맞이한 나에게 배달되었다. 런던의 거리와 정취가 묻어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추억 속으로 져들었다.


내 기억은 2007년의 런던으로 흐른다. 

그 당시 나는 초등생 학부모로 영어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외국에서 아이에게 영어와 문화 체험학습을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동생 가족이 런던에 살고 있어서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아이 그리고 엄마 세 명이서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엄마는 외국에 사는 아들 얼굴 본 지가 오래되어서 함께 모시고 가게 되었다. 


동생은 몇 년 만에 만나는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고 히드로 공항에서 동생 집까지는 1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동생은 플랫이라 불리는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1층에는 거실과 부엌이 있고 2층에는  방 세 개와 화장실이 하나 있는 구조의 집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부엌이 있고 앞쪽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이 있는 구조라서 거실이 방 역할을 하는 집이었다. 엄마와 딸아이와 나는 거실에서 생활하고 잠을 잤다.


위층에 방이 3개 있었지만 남동생 부부와 아기가 하나 사용하고 나머지 2개의 방은 유학생들에게 세를 놓고 있었다. 런던은 월세가 너무 비쌌고 동생네 부부는 월세를 감당하기가 벅차   두 개를 세 놓고 그 비용으로 월세를 충당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감지덕지했다. 동생 부부 덕분에 런던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생네는 경제적으로 어러운 형편이었 더구나 올케는 그 당시 째를 임신한 상태였고 그 와중에  시댁 식구 세 명과 한 달 동안 지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올케에게 감사할 뿐이다.

대영박물관 (혹은 영국 박물관)


런던에서의 첫날은 런던, 하면 내게 제일 먼저 떠올랐던 대영 박물관엘 갔다. 너무 넓고 방대해서 하루에 다 볼 수 없다는 그곳을 그래서 한 달 동안 네 번 다녀왔다. 박물관에 관심이 많았던 도 있지만 입장료가 무료라서 더 자주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의 신전과 살아있는 듯 느껴지는  조각 작품들, 이슬람 문명의 아름다운 문양과 그릇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문자, 이집트 문명의 로제타석  등이 전히 억 속에 남아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세 번 다녀왔다. 역시 여기도 입장료가 무료인데 고흐와 루벤스 그림을 다시 보고 싶었다. 고흐의 <해바라기>와 루벤스의 <파리스의 >은 딸아이에게도 인상 깊었던지 일기장에 감상평을 적어 놓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은 그림 그리는 기법이 독특하다고,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은 자신이 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게 신기다고 딸아이는 일기에 썼다.

초등 5학년이던 딸아이의 영국 체험 학습장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아이들을 위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 많았다. 예를 들어 무료테이트 모던에서는 아이들에게 화방 도구를 빌려주고 림을 찾아다니며  유명한 화가의 그림 기법을 따라 그려 보 프로그램이 있었고 역시 무료인 테이트 브리튼에서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도 터너의 스케치 콜로세움을 따라 그려 볼 수 있었다.

어린이 박물관이나 런던 박물관 같은 곳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체험 학습  프로그램들이 런던에는 많아서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옥스퍼드에서 남동생과 조카,엄마와 딸아이


런던에서 가까운 옥스퍼드는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몇 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대학 도시여서 그런지  역사와 지성과 현대인의 생활이 함께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크라이스트 처치 방문하고 건축물이 예술 자체인 보들리안 도서관도 방문했다.  오는 7월의 어느 날 방문했던 옥스퍼드의 거리와 오래된 건물들은 낡았다기보다는 여러 시대를 거쳐 살아온 이야기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백 년 전에 지은 집에서 누군가가 여전히 현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학도시 옥스퍼드는 역사가 현재가 되어 살아 숨 쉬는 도시였다.


스톤헨지에서  딸아이와 나


신석기시대에 세워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스톤헨지도 궁금했다. 솔즈베리 평원에 원형으로 세워진 거석 군은 평화로운 주변의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다. 록이 넘실대는 들판에서 양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지금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이지만 그곳에 세워진 거대한 돌기둥들은 오천 년 동안 이 땅에서 일어났던 전쟁과 약탈, 생과 사, 시대와 왕조의 흥망성쇠, 종교와 박해, 태양과 달과 별들의 움직임 등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스톤헨지는 신비롭고 장엄하고 웅장하고 불가사의했다.


그렇게 우리류의 역사와 문화 종교와 예술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임신한 며느리에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셨고 올케는 한국에서 온 시댁 식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의 식탁은 소박한 가운데 항상 풍요로웠고 즐거웠다.

유학생들이 집에 있으면 불러서  함께 식사를 했다. 집을 떠나 머나먼 외국에서 외로울 그들에게 올케는 언니처럼 그들을 챙겨주었고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매번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이나 도시락을 싸셨다. 이 많은 식구들이 사 먹으려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시면서... 덕분에 우리의 점심은 대부분 공원에서 혹은 벤치에서 주먹밥이나 김밥과 함께 한 피크닉이었다.


어느덧 그로부터 15년이나 흘렀는데 런던에서 보냈던 한 달은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선명하다.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길을 넓히지 않아 꼬불꼬불 좁은 도로를 곡예하듯 달리던 런던의 명물 빨간색 2층 버스의 기억, 참새가 방앗간을 들락거리듯 동생 집에서 가까운 테스코에 들락거리며 장 보던 기억, 웨스터민스터 사원과 빅벤을 둘러보고 템즈 강 주변산책하던 기억...


런던에서 나는 처음으로 긴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동안 학원에서는 선생님으로 집에서는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딸로 며느리로 파묻혀  살다가 역할들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문화예술을 원 없이 보고 즐기고 이국의 낯선 풍경들을 한 달 동안이나 구경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날들이었다. 


아이의 문화체험 덕분에 내가 제대로 된 힐링을 할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동생이 런던에 살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세상에 안 계신 엄마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여행할 수 있어서, 점심으로 먹었던 엄마의 주먹밥을 지금도 딸애와 같이 추억할 수 있어서 고마운 일이다.


동생이 보내준 신년 카드 덕분에 난 다시 한번 런던으로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소중하고 고마운 기억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40대였던 나와 10대였던 딸아이, 60대였던 엄마와 30대였던 동생네 부부, 아기였던 조카, 올케 뱃속에 있던 조카까지 같이 만나 동생이 보낸 카드 속의 가족사진처럼 화목하게 웃으며 사진 한 장을 찰칵, 찍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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