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오랫동안 지워버렸지만, 잊을 수 없는 번호가 손가락 끝에서 자연스럽게 되살아났다. 몇 년간 이어진 관계는 어떤 기억보다 또렷하게 몸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지금껏 피해 다니는 것밖에 하지 못했구나, 은밀한 죄책감이 결혼식 이후 다시 들이닥쳤던 것이다.
전부 생각 저편으로 내던져버려서 알아서 사라질 줄 알았는데. 조금이라도 올라올 때면 발로 짓밟아버리며 격하게 무시했었다. 그 밖에서 스스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리화했다.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언젠가는 잊을 수 있겠지 굳게 믿고 싶었다.
카카오톡 대신, 광고와 스팸이 가득한 문자 메시지를 열었다. 더 솔직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포장했지만, 날 차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지질한 마음이 커졌다. 뭐 어쨌든, 이제는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머뭇거린다면 또다시 도망칠 게 분명했으니까.
- 그때 결혼식에서 봤는데, 인사를 제대로 못 했네.
짧고 어색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외면했기에 내 마음은 그 이상으로 담겨 있었다. 뾰족한 모양의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심장이 두어 번 요동쳤다. 꿈속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터널 끝의 빛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숨을 고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누가 말을 걸기 전까지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다. 방금 보낸 문자가 오늘 일어나야 할 일들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아니면 앞으로의 내일이 변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 멍청한 나는 쿨한 척 마음과 다른 숨을 쉬고 있겠지.
그래도 분명해졌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