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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전거 07화

연락(2)

<7>

by book within

그날따라 유독 일이 없었다. 책상 위엔 처리할 보고서도 없었고, 오후에 맞춰 바빠지는 전화조차 울리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이런 고요함이 즐거웠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일이 없으니 마음은 오로지 문자에 묶여버렸다.


보낸 건 단 한 줄. 몇 년 만의 연락이었다. 더 이상 덧붙일 필요도, 다시 보낼 생각도 없었다. 한 번 용기를 냈으니, 그걸로 오늘의 나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낸 거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핸드폰 화면은 줄곧 침묵을 지켰다. 답장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내가 보낸 문장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너무 가벼웠던 건 아닐까, 혹은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닐까. 내가 전하려던 뜻이 아닌 다른 의미로 읽히진 않았을까.


5분이 1시간처럼, 1시간이 5시간처럼 느껴졌다. 점점 올라오는 수치심을 떨쳐버리고 싶은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자전거를 타려면 4~5시간을 더 버텨야 했다.


켜져 있는 엑셀의 칸 하나하나에 여러 장면이 담겨 교차했다. 과거 순으로, 기억나는 순서대로, 앞으로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은 마지막 칸으로. 멍 한 표정 뒤로 상상 속에서 나만의 셀을 만들어나갔다.


혜주가 메시지를 읽고 잠시 웃는 모습, 고개를 저으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중얼거릴 모습, 혹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버릴 모습까지. 어떤 장면도 확실하진 않았지만, 하나같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업무 메신저의 알람과 함께 다시 한번 깨어났다. 손이 저렸다. 핸드폰을 화면이 보이지 않게 돌려버렸다. 답이 없다고 해서 보낸 문자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달아볼까 고민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끊임없이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화면이 켜지길, 아주 짧은 답장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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