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안 보이는 곳에 치울 수 없었다. 또다시 기회를 놓칠까 봐. 미세한 진동이라도 울리기를 바라며 흘깃거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거칠고 조급한 소리들이 사무실을 채웠다. 그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입을 꾹 다물고 눈꺼풀로 눈알을 누르며 시간을 버텨냈다. 그제야, 아침에 잠금장치 없이 던져 놓았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그래도, 그 많은 자전거들 사이에서 내 자전거만 뽑아갈까?
머릿속으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빠르게 그려졌다. 자전거에 대한 걱정은, 오후 내내 눌러놓았던 생각들을 불러냈다. 단 한 줄의 문자가 하루 종일 마음을 움켜쥐고, 지배하고 있었다. 시계는 이미 6시를 넘어섰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가방과 핸드폰을 쥔 손목과 발목이 뻣뻣해졌다.
긴장을 풀기 위해, 아무 생각도 없는 바보가 되고 싶어졌다. 짐을 책상에 올려놓고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까만 화면 위로 혜주가 메시지를 읽고 무시하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까지, 그 사이로 자전거를 훔쳐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지나갔다.
"집에 안 가? 일이 많은가?"
"네? 아, 아니요. 내일 뵙겠습니다"
팀장님의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상계단을 통해 최대한 빠르게 내려갔다. 무사히 서 있는 자전거를 확인하고 나서야 경직된 목과 어깨가 늘어졌다.
-하아. 속으로 한숨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속도가 붙을수록 몸은 균형을 찾았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페달을 밟는 만큼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는 듯했다. 절반쯤 달렸을까, 터널이 보였다. 그 앞의 버스정류장에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겹쳐졌다.
-저기, 사람들이... 뭐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자전거에서 내려서 안장과 손잡이를 조정했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터널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어?
말을 꺼내려는 찰나, 크게 맞은 것처럼 머리가 흔들리며 눈이 감겼다. 발바닥에서 바람이 느껴졌다. 그동안 겪었던 꿈들이, 자전거 위에서 날려 보냈던 생각과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모든 게 뒤섞이는 사이, 멀리서 작게 빛나던 터널의 출구가 서서히 사라지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