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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자전거 09화

터널(2)

<9>

by book within

널의 끝이 점점 사라지며 어둠이 짙어졌다.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페달을 밟았지만,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 좀 전에 맞춰 놓은 안장과 손잡이는 제멋대로 흔들렸고 자전거는 곧 부서질 듯 덜컹거렸다. 흔들리는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바퀴가 회전하는 소리와 불안해진 숨소리만이 터널을 메웠다.


나를 붙잡던 손은 이미 사라졌고, 깜깜한 터널 한가운데 홀로 남겨졌다. 흔들림의 이유를 찾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안장을 확인하려고 다시 고개를 들자, 머리 위로 환한 빛이 느껴졌다. 습하고 탁한 공기가 사라지고,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가 밀려왔다. 자전거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이곳은 터널이 아니었다.


머리 위에는 지나치게 크고 작은 노란 전구들이 무질서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발밑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탁한 붉은색 카펫이었고, 벽과 천장은 오래된 방처럼 거칠었다. 크고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끝을 모를 정도로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음식들은 기이할 정도로 부패했거나, 형태가 이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맡았던 냄새가 이거였구나


그들은 가끔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움직였지만, 몇 번을 반복하고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공간은 낯설지만, 꿈에서 느꼈던 익숙한 기운이었다. 이 사람들, 어디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고요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내 발소리만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꿈보다 뚜렷한 감각이 공포와 불안을 지우기 시작했다. 매번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나를 알고 있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갔지만,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더 빠르게 굳었다. 음식의 냄새가 더 강해졌다. 접시 가장자리는 곰팡이처럼 보이는 무늬가 번지며 색을 잃어갔다.


조명의 열기로 인해, 방의 온도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흘리는 땀과 음식의 냄새로 인해 구역질이 치밀었다. 꿈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뚜렷한 감각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한참을 중얼거리며 돌아다녔지만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희미해질 즈음, 발소리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 여기 있었구나”


고개를 돌리자 혜주가 서 있었다. 숨이 잠기고 가슴이 움찔했다. 발소리는 멀리서 들렸는데, 혜주는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어딘가 들뜬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상하지 않아? 다들 이렇게 있는데, 아무 말도 안 해”


혜주가 테이블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표정과 기운 때문에 혜주를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다시 마주하고 싶었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다. 말문이 막혔다.


“근데 난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그 말은 방에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혜주는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며, 시선 바깥으로 밀어냈다.


"얘기 좀 해!"


목소리를 높이며 내 손목을 세게 잡았다. 손에 이끌려 벽지와 같은 색을 띠어 숨어있었던 작은 문이 드러났다. 방에서 오래된 책과 옷에서 풍기는 듯한 퀴퀴한 냄새가 났다.


"기억나? 여기 비슷한 곳, 우리 둘이 간 적 있잖아.”


혜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하지 못했던, 듣고 싶었던 말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말들을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자꾸만 방 바깥이 신경 쓰였다. 그곳에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그들의 입술이 떨리고, 텅 비어 있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몸은 굳어있지만, 분명히 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저 사람들,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나는 처음으로 혜주의 말을 끊었다.


혜주가 한숨을 쉬며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과 행동들은 짜인 것처럼 딱딱했다.


"···미안해, 나 이제 가볼게"


“나한테 할 말 있잖아”


혜주의 손이 뺨에 닿았다. 온기가 느껴졌지만 그것뿐이었다. 눈을 마주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와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만 내 눈동자를 비췄다.


“여기서는 아무도 우리 방해 못 해. 우리 얘기만 하자”


그 말은 주문처럼 느껴졌다. 모든 걸 잊고 그 말에 빠져들 뻔했다.


"···그건 네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야"


그때, 문 앞에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앉아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움직였다. 이어서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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