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자전거 11화

에필로그

<끝>

by book within

터널을 빠져나오자, 밤을 알리는 차가운 밤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발끝이 땅을 단단히 밟는 순간, 방금까지의 일이 환상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손목에는 여전히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고,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그동안 나는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고,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에 매달리면서 스스로의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도 결국은 무기력함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꾸역꾸역 마음을 숨겼다.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놓친 건 서로가 아니라, 각자의 길을 정하는 용기였다는 것을.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길을 잃었고, 답을 찾을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20대의 우리는, 수많은 불안감에 떨리던 마음을 사랑이라고 착각했을까? 잘 몰랐으니까 그렇게 믿었고, 그래서 그걸 포기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힘들었던 걸까. 굳게 마음을 먹고 결정해야 했던 건 혜주와의 관계가 아니었다. 내 삶의 방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결혼식에서 마주친 혜주의 표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지금 다시 만난다면 진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여전히 그 방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방의 존재를 알았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음을 알았다. 기억 속에 머무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동시에 나 자신도 멈추지 않기로. 자전거는 안정감을 찾았고, 이전보다 가방이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등 뒤에서 작은 소리들이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날, 연달아 울리는 메시지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따 12시에 봐. 내 얼굴은 기억나지?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았다. 자전거를 계속 타고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멈추지 않고 싶었다. 창훈이와 했던 여행도 그랬으니까. 달릴 수 있을 때까지, 그때서야 쉴 곳을 정했으니까.


오늘의 약속이 서로를 다시 멈추게 한다면, 용기를 내어보려고 몇 번을 다짐하며 밖으로 나왔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현실 위에 나를 세웠다. 이제 내 발걸음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내 삶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keyword
이전 10화터널(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