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전의 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뒤면, 묘한 괴리감이 남았습니다. 대화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내 생각과 말’이 없었습니다. 어떤 책에 쓰인 작가의 문장을 내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스스로 ‘헛똑똑이’가 되어버린 순간이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게 제가 독서를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내세울 것이 없던 스무 살 초반, 어려서부터 무시당하던 기억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더 이상 그런 자신으로 남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모른다’는 말을 가장 큰 결핍으로 여겼습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든 더 많이 알기 위해 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건 배움이 아니라 방어였습니다. 결핍을 감추기 위해 책을 펼쳤습니다. 작가의 글을 양손에 꽉 쥔 채, 똑똑한 사람인 척했습니다. 독서는 철저히 혼자의 일이기에, 문장 사이의 빈틈 속에 숨어 자신을 감추기 쉬웠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알고 있음’에 취한 채,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로 인해 남들보다 조금은 앞서 갔지만,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몇 번씩 밥을 사주시고 혼을 내던 교수님의 과격한 끈질김과, 친구들의 애정(?)이 담긴 욕설이 없었더라면 사회부적응자가 되어있었겠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제는 ‘나를 보여주는 일’에 이전처럼 망설이지 않지만, 어쩌면 그 ‘조금 나아진 모습’에 안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말, 오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남몰래 흠모하는 그 친구는, 누구를 만나든 한결같습니다. 혼자일 때 삼켰던 마음을 술김에 털어놓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서툰 모습조차 자신으로 받아들입니다. 가끔은 과할 만큼 자신을 아끼고 좋아합니다. 그런 친구를 보며 깨닫습니다.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을 갖는다는 건, 이리저리 잘 휘어지기 위해 애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서서 모든 것을 받아낼 수 있는 용기, 그게 진짜 유연함이 아닐까 합니다.
더 유연해지려고 합니다. 올겨울에 그 마음이 얼어붙지 않도록 애써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봄이 왔을 때, 조금 더 부드러운 모습으로 피어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