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은 ENERGY
사랑, 인생, 행복, 죽음 같은 우리가 보통 추상 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간혹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혹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가 하는 궁금증 때문에 그 대상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은 참 재미나다. 그런데 또 두려운 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그 쉽지 않은 것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죽기는 싫다.
살면서 소소한 행복감들이 내게 말한다.
"빨리 죽고 싶지 않아. " 여기서 또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은 그 찰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지속적이지 못하다.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고 그 찰나의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멈춘다고 한다면 그동안 했던 "사랑"은 결국 우리가 아는 그 사랑인 것일까? 인간이 사랑에 대해 어려워하는 것은 사랑은 아마도 그 찰나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행복과 같이 , 죽음과 같이 찰나의 것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사랑은 인생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하기 위한 찰나의 감정일 뿐이다.
너를 사랑해라는 것은 곰곰이 짚어 봐야 할 여지가 있다. 왜지? 왜 날 사랑하지? 좋아하는 것이겠지. 내가 오늘만 예뻐 보이는 거겠지, 내가 지금 재미있는 거겠지. 사랑한다는 말 쉽게 하지 마 , 그 뜻을 모른다면...
하지만 나도 그 뜻을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설명이 불가하지만 어쨌든 모르면 그 단어를 쓰지 마.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쓰고 그 단어를 제대로 사용했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식들에게다. 어쩔 때는 사랑한다는 말도 모자라다. 그 보다 더 큰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뽀뽀를 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내 시간을 할애해 주고 에너지를 챙겼다가 놀아주고 함께 산책을 가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그리고 건강을 건사하고 아이들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신경 쓴다.
친구 생일 파티, 본인들의 생일 파티, 학교 행사, 함께 일을 하면서 주고받는 이야기와 그들의 정신과 체력에 대한 걱정과 나의 지원들. 사랑 = 희생인 것인가? 아마도... 적어도 지금 내게 사랑은 에너지를 말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그만 사랑할래 라는 순간은 너에게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다. 일할 힘은 있어도 너를 사랑할 힘이 없다는 것. 웃을 힘은 있어도 너에게 웃을 힘은 없다는 것, 내 안에 차 있는 에너지의 분배를 너에게 조금 도 배분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너에 대한 에너지, 그 열정이 식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내게 사실상 에너지는 있지만 그 에너지를 너에게 쓸 마음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그 에너지를 움직이는 마음 또한 에너지. 에너지의 에너지. 에너지가 나에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