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라 7차시 후기
1. 메타포라 7차시에 다녀와서
1-1. 나는 왜 이렇게 모지라는가
메타포라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잠이 안 온다. 일단,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와서 들은 것, 배운 것을 내 언어를 이용해 소화할 시간이 필요해서 벅찬 기분이 든다. '오늘도 많이 배웠다'는 감정. 잠이 안 오는 더 큰 이유는 자괴감이다. '와, 나는 어쩜 이렇게 책을 겉으로만 읽는 데다가, 감수성이 떨어지는 걸까?' 어제도 새벽 3시까지 반성하느라 잠을 못 잤다. 게다가 어제 올린 내 에세이도 완성이 되지 않은 글을 올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수지님, 어스님, 복복님의 글도 무척 좋았다. 글로 빨려 들어갔다. 기가 죽었다. 근데 내가 다음 주에 발표라고? 큰일이다. 진짜 잠이 안 온다. 복복님의 글은 나를 출산 직전 떨고 있던 날들로 데려갔고, 수지님의 글은 내가 엄마의 방패가 되었던 어린 시절로 순간이동 시켰다. 어스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잊고 살고 있었던 '군말 없이 일단 했던' 10년 넘는 야근을 떠오르게 했다.
1-2. 해피 실패
결국 오늘 아침에 일기를 쓰면서 어젯밤 고민했던 모든 걸 '해피 실패' 서랍에 넣기로 했다. 그래도 수업에 안 갔던 것보다는 더 나아, 아무 말도 안 한 것보다는 나아, 책도 읽었고, 깊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책에 나온 의미를 생각해 봤잖아? 이런 실패가 없으면 더 나은 나도 없겠지. 다음 책을 더 제대로 읽어 보자. 다음 글을 더 제대로 써보자, 고 스스로를 달래줬다.
1-3. 즐거운 앞풀이
망원동은 아무 일 없이 걷기만 해도 신나는데, 앞풀이하러 가는 길엔 거의 춤을 춘 것 같다. "돼지고기 떨이 들여가세요. 오늘 뜨끈~한 김치찌개 해 드세요."라고 외치는 정육점 사장님의 활기찬 말투에 미소 지으며 우미락으로 거의 뛰어갔다.(나는 왜 어른이 되어서도 신나는 일이 있으면 뛰어 다니는 걸까?) 수업을 두 번이나 빠져 더 보고 싶었던 메타포라 동료들 뒷모습부터 이렇게 반가울 수가! 고추튀김과 맥주도 맛있었지만 그 보단 역시 대화가 최고였다. <다섯째 아이>에서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알려준 너랑 바다 님(와!), 내 독립 출판물을 다 읽어 주셨다는 하루님(감동), 막둥이 임신했을 때 이야기까지 해주신 바라야바님(대단하세요!)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와이 가서도 느끼지 못한 즐거움에 연신 목소리가 커졌다.
2. 잊고 싶지 않은 은유샘의 말
2-1. <다섯째 아이> 함께 읽기 부분
이번에 <다섯째 아이>를 다시 읽었더니 다른 것들이 보이더군요. 독서도 인연도 맥락과 타이밍이에요. 내가 뭘 경험하고 이걸 보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도리스 레싱은 이 작품에서도 그렇고 <19호실을 가다>에서도 그렇고 정상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 행복과 가족을 기획하는데 실패하는 이야기를 해요.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다.' <19호실을 가다>의 이 첫 문장을 무척 좋아해요. 삶이라는 게 그렇죠. 이론으로는 쉬운데 예상치 못한 상황과 요소에 의해 틀어지죠.
<다섯째 아이> 이 작품을 장애아이를 낳았을 때 가정의 이야기로 읽으면 너무 단순하죠. 가족은 뭐야? 행복은? 인간의 본성은 뭐야?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을 함께 읽어야 할 것 같다.
(데이비드에 대해) 도망 갈 수 있는 건 특권이거든요. 안에서 소진되는 게 엄청나잖아요.
호칭에 자기감정이 다 드러나는 법이죠.
고립되는 게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것 같아요.
(정육점에서 온 식탁에 대해) 피가 배인 식탁은 암시, 복선이죠.
2-2. 합평
그러면 이 필자의 욕망이 구체적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더 또렷해져요.
모든 사람이 나로 사는 욕망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은 통제가 안 되지만 글은 통제가 되는 것이니, 가족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글을 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글 쓰는 게 내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잖아요.
수지의 글은 엄마와 수지의 캐릭터가 확연히 대조되어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는) 글이 더 잘 보여요.
집안에서 가장 약자가 모든 것을 알고 있잖아요. 없는 사람 취급하기 때문에 어디선가 다 듣고 있거든요. 글도 항상 약자가 쓰는 거죠.
고유명사가 많이 나오고 구체적으로 쓰면 글을 따라가기가 쉬워져요.
좋은 글의 특징은 그 사람이 보이는 글이에요. 그 사람만 쓸 수 있는 글이 있거든요.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만 내가 몰랐던 나를 알게 되죠.
글을 쓰다 보면 나를 알아가게 돼요. 내 안에서 해결이 안 된 질문도 글로 쓰면 적어도 글 안에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걸 구체적으로 써보면 달라지거든요.
사람이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재밌잖아요. 전 큰 회사보다 작은 회사에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더 끌려요.
글에서 중요한 것이면 여러 번 변주된 표현으로 반복해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