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라 8차시 과제 에세이
지금 당장 죽는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릴 장면은 뭘까?
주기적으로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 시작한 건 4년 전인데, 난자 채취를 하러 두세 달에 한 번씩 수술대에 오를 때였다. 수면 마취를 위해 팔, 다리가 묶이는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내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과배란 주사를 맞으며 귀하게 키운 난자들이 배란돼 버렸으면 어떡하지, 공난포(난자가 자라는 주머니인 난포는 커졌는데 안에 난자는 없는 경우)가 나오면 어쩌지?
이때 나를 살려보겠다고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지금 여기 말고,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는 것.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장소로, 순간으로 내 마음을 보내면, 마법처럼 차분해졌다. 그때부터 마취과 선생님이 “이제 약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하면 나를 ‘그곳’으로 보냈다. 그곳은 네팔 촘롱 마을에서 2주간 걸었던 굽이굽이 산을 바라보는 순간이기도 했고, 윤슬이 반짝이는 해변에서 스노클 장비를 끼고 활짝 웃으며 바닷속으로 수영해 들어가는 남편을 보던 때이기도 했다.
요즘 이 질문에 내가 답하는 장면은 하나(딸)를 안고 모유를 먹이는 순간이다. 이 장면에서 아기는 50일쯤 되었고, 눈을 감고 젖을 먹고 있다. 나도 이때가 기회다 외치며 눈을 감고 쉬면 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그 모습은 내가 태어나 본 장면 중 가장 평화로운 장면이라서. 너무 아름다워서 계속 바라보게 된다. 이제 하나가 눈을 뜨고 나를 본다. 옹알이도 못하는 아기지만 눈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다. 엄마 나 편안해. 기분 좋아.
흔히들 모유 수유의 장점으로 말하는 게 아기가 엄마의 따뜻함을 느끼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다는 건데, 나는 반대로 아기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딸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고 보면 15개월 동안 모유 수유를 하며 모유 수유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또 내 몸에 대해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었다.
모유 수유의 세계로 진입하던 조리원 시절. 친구 B가 나를 응원하겠다고 찾아왔다. 근처 카페에 앉자마자 B는 출산은 어땠는지, 엄마가 되니 기분이 어떤지에 대해 물었는데, 나는 한 두 마디로 짧게 대답하고, 대신 모유에 대해 알게 된 것을 전하기에 바빴다.
“왜 젖꼭지랑 유륜이 진한 색인 줄 알아요?”, “아직 시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기한테 바로 거기 먹을 게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해서 그렇대요.”
“쌍둥이를 양쪽으로 동시에 모유 수유할 수 있는 거 알았어요? 저 그 장면을 방금 보고 왔어요.”
“저는 한 명 먹이기도 양이 부족해서 저 엄마는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괜찮대요. 모유는 수요가 있으면 그만큼 몸에서 더 만들어 낸대요. 아기가 빈 젖을 계속 빨면 엄마 뇌에 양을 늘리라는 신호가 간대요.”
"전유와 후유라는 게 있는데요. 앞에 나오는 젖은 탄수화물의 함량이 높아서, 아기들 입맛을 돌게 하는 애피타이저 역할을 하고요, 후유는 단백질과 지방 성분이 중심이래요."
“모유 수유하는 동안 생리도, 배란도 안 하는 거 알았어요? 태어난 아이를 집중해서 키우기 위해서래요. 우리 몸의 시스템이 엄청나요.”
B는 입을 벌리고 놀라며 듣다가 일어나며 말했다. “근데 왜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걸 모르고 사는 거죠?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줘요? 저도 지금 처음 알았어요.”
출산 직전 만난 엄마인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모유에 집착하지 마, 너만 힘들어.", "요새 분유도 좋아." 결론적으로 ‘모유 수유=고생’이라는 연결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태어나서 송아지가 먹어야 할 소젖을 먹는 게 어색해 일단 모유를 시도해 보며 방향을 정하자 싶었다.
출산 이틀 후부터 아무 경고 없이 가슴에 초록색 불이 켜지더니 젖이 돌기 시작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내가 알던 가슴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크기는 50%, 무게는 100%가 증가해 있었다. 그날부터 젖이 고이면 가슴이 아팠다. 한번은 출산 후 80일 정도 되던 날이었는데, 당장이라도 젖꼭지가 몸에서 탈출할 것 같은 압력과 고통이 느껴져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젖을 먹일 시간이 벌써 3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이 통증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건 아기뿐이었다. (유축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전 유축하면 영혼이 유축되는 기분이서 유축기에 정을 못 붙였습니다.) ‘하나야 나 좀 도와줘’라고 속으로 말하며 잘 자고 있는 아기 옆으로 다가갔다. 내가(아니면 밥이) 온 걸 알았는지 아기는 금세 깨서 울기 시작했다. 젖을 물리니, 와 살 것 같았다. 육성으로 아기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놀랐다. 자연이 기획한 이 지독한 연결에. 아기를 먹이라고 엄마에게 통증으로 알람을 해주는구나. 아픈 건 싫었지만, 내가 거대한 자연 질서 안에 포유류로 존재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기분은 경이로웠다.
남편과 나는 내 몸이 마흔이 넘어서도 모유를 만들 수 있고, 아기가 내 젖만 먹고도 몸무게가 하루에 30g씩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검색해 보니 초유는 거의 기적의 물질이었는데 내 몸에서 아기를 병원체로부터 구하는 면역물질이 나온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내가 태어나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있던가? 보람찼다. 게다가 아기가 젖을 물고 있는 그 표정을 보고선 모유 수유를 중단할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안심하는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라니!
물론 모유 수유로 아름다운 순간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딸은 젖을 물어야 잠이 드는 일명 ‘젖물잠’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가 난 후로는 매일 밤 젖꼭지를 물리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단유를 해야지 마음을 자꾸 먹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자유가 좋지만 겹쳐서 종속도 좋은 기분. 아기와 분리되고 싶지만, 또 연결되고 싶은 이중성, 삼중성 때문에 그만두기 어려웠다.
결국 단유를 하며 펑펑 울었다. 모유 수유를 중단하는 일은 아기들만 아쉬워하고 엄마들은 환호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남편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제 좋아하는 맥주도 실컷 마실 수 있고, 젖꼭지를 물릴 일도 없는데 왜 그러냐고 했다. 나도 그 정도로 슬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감정을 알고 싶어 들여다보다가 그제야 내가 무슨 경험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임신, 출산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모유 수유 하면 바로 '엄마의 희생', '유난이다'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직접 해보고 나니 이제 모유 수유 하면 ‘힘들지만 아름다운 일’,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내가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은 15개월, 깊은 행복감을 누린 15개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