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없이 씩씩한 삶도 어려워서 더러 외롭다
지난 11월, 한 여자의 부고를 들었다. 긴 시간 보지 않던 후배의 문자로 알게 된 부고는 이미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지 나흘 뒤에 도착했다. 황망한 가슴을 한동안 손으로 누르고 문자의 글자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뜻을 헤아렸다. 실감 나지 않아서, 현실이 낯설어서 겉옷을 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와 불광천을 오래 걸었다.
이 세상에 없는 그를 처음 만난 건 서른을 막 넘긴 때였다. 그 무렵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는, 그러나 ‘나’ 이고자 하는 욕망은 그득한 여자애였다. 여기저기서 결혼의 압박이 들어와도 내 이름으로 된 존재증명이 먼저였다. 그러나 방법도 용기도 없어 어느 자리에서나 늘 좀 위축되어 있었다. 고작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무것도 아닌 나를 부끄러워 한 나는 내가 경멸하는 주류 논리에 먹힌 안쓰러운 여자애였다. 할 줄 아는 건 그림 그리고 책 읽는 거 말고는 없는 내가 유일하게 품은 마음은 작가가 되고 싶은 거였다. 그 마음에 손 내밀어 준 이는 나보다 아홉 살 많은 여자였다. 세련된 취향, 보수적인 정치관, 내가 그동안 만나던 세계의 사람과 많이 다른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내 첫 그림책의 기획자가 되었다. 그가 준 선물 같은 첫 책을 안고 여기저기 출판사 문을 두드리고 다녔고 그와 점차 멀어졌다. ‘나는 소라씨가 세상에 나갈 때 가방에 좀 더 준비물을 챙겨 나가길 바라’라고 말한 그분 말대로 준비가 부족했는지 그 뒤의 내 그림책 작업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제 나이 든 나는 열 살이 훌쩍 넘어 차이나는 젊은 여성들과 종종 협업을 한다. 수평적인 관계와 지위로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태도와 가치들이 충돌하고 나는 적당히 입을 다문다. 거침없고 때론 미묘한 젊은 여성들의 발언에 내가 생물학적 나이에 걸맞은 지위가 없어서, 작가적 성취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나 피해 의식도 갖는다. 어린 여성들에게 종종 마음을 다칠 때 선생님을 떠올렸다. 나도 그의 맘을 다치게 했을까? 그는 나에게 그 시기 가장 원하는 것을 줬는데 내가 그에게 준 것은 무엇인지 암만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받기만 하고 그의 곁을 훌쩍 떠났다. 젊은 만큼 이기적이었고 그게 독립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자 최근 젊은 동료에게 받은 생채기가 좀 누그러졌다. 관계의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 것은 결코 없을 일이기에.
소소한 성취와 실패를 반복하며 폼 나는 작가와 멀어졌지만 성취와 실패는 결국 같은 결의 나이테라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내 존재는 누구에게 증명해 보이는 게 아니란 걸 이젠 알고, 자주 넘어지지만 넘어진 만큼 또 일어선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자기 걸음대로 길을 내며 간다. 물론 머리로 아는 만큼 마음이 성숙한 것은 아니어서 관계는 힘들고 기대 없이 씩씩한 삶도 어려워서 더러 외롭다.
초등학교를 제외하면 줄곧 ‘여’ 학교를 나오고 졸업 후에도 여성의 숫자가 압도적인 곳에서 일하고 주로 여자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산 나는 생애의 매 시기마다 많은 여자를 만났다. 이 여성들과의 관계는 대개의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내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자연스레 멀어져 안 보기도 하고 내가 상처받았다 생각하여 안 보기도 하고 이해가 엇갈려 그만 보기도 했다.
작은 책에 정기적으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부고를 들은 무렵 받았다. 어떤 주제의 글을 쓰고 싶으냐고 전화 속에서 편집자가 살갑게 물었다. 냉큼 ‘여자’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이젠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여자, 여전히 만나는 여자들을 떠올렸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생채기가 있는 사람도 있고 준 것과 받은 것의 저울질이 맞지 않아 억울함으로 남는 사람도 있다. 모두 내가 아는 여자들이고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는 여자들이고 이 여자들을 만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연재의 제목을 ‘아는 여자’로 정하니 이젠 만날 수 없는 아는 여자, 나의 선생님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바람결에 소식을 전해 듣고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재하는 이가 되어버렸다. 예고 없는 부재는 허술하고 약한 모습은 보이길 싫어하는 성정의 그분과 어울리는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한동안 멍하게 보냈다. 그러다가 이건 그의 부재를 슬퍼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젊은 시기를 떠난 보낸 자기 연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는 여자’에서는 내가 아는 어른 여자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자기 연민 없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자기 성장의 강박으로 곁의 사람을 상처 주지 않는 내가 아는 어른 여자들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어른 여자에 대해 쓰다 보면 나도 조금은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흉내라도 내겠지 하는 마음이다. 글을 시작하며 비장하고 싶지 않은 건 좋은 신호 같다. 힘 풀고 재밌게 써보자.
*월간 작은책 202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