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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Aug 21. 2024


넝쿨의 여자들

주면 주는 대로, 받으며 받는 대로 산뜻하게 고마울 뿐이다


  최근 몇 년 광명의 철산 4동 넝쿨 어린이 도서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있다. 7호선 철산역에 내려 이 십여 분가량 언덕길을 숨차게 올라가다 보면 하늘 아래 첫 동네처럼 철산 4동과 만나게 된다. 그중 동네 가장 높은 곳에 넝쿨도서관이 있다. 한겨울만 제외하곤 땀에 젖어 도서관으로 들어선다. 이곳 넝쿨도서관의 여성들과 매주 한 번씩 뜨개모임을 하는데 뜨개는 구실일 뿐 하하 호호 웃음과 수다가 넘친다. 삼 년을 매주 오가다 보니 이젠 내가 사는 서울보다 이곳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2017년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알게 된 철산 4동은 낡고 다정한 동네 풍경에 먼저 반했다가 다정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 지금에 이르렀다. 


 ‘넝쿨을 뜨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데 넝쿨 도서관 관장인 미자 관장님, 뜨개를 가르쳐주시는 유정수 어르신과 정천순 어르신이 있고 아이들 키우기에 한창인 애경님과 해선님, 식당 알바와 각종 봉사모임으로 바쁜 정은님도 함께 한다. ‘넝쿨을 뜨다’라는 모임이름은 중국에서 온 국화님이 지어 만장일치로 통과한 이름이다. 살아온 처지와 내력이 각기 다르고 막내와 왕언니의 나이차가 50살에 이르는 넝쿨의 여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편안하고 즐겁다. 간혹 서울에서 맘이 상해 뾰족해져 왔다가도 어질고 순한 분위기에 금방 마음이 풀린다. 삼 년이 지나는 동안 뜨개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뜨개코를 어설프게 잡던 분들이 스웨터나 가방, 거실카펫까지 척척 손뜨개로 만들어 낸다. 그림을 그리는 나보다 창작의 생산력이 왕성한 이 분들이야 말로 예술가 같다. 

 주로 그림강습으로 생계활동을 하는 나는 서울에서 여성들과 모임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단체들에서 드로잉 워크숍을 한다. 또 내가 수강자가 되어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다양한 여성들을 만난다. 다양하다고는 하지만 서울의 중산층 대졸학력을 가진 기혼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직업이 있든 없든 신기할 정도로 아이와 남편이 주요 화제라서 비혼인 나는 지루할 때가 많다. 더러 이성애 정상가족을 기본 값으로 정해놓은 태도들을 만날 때는 와락 신경질도 난다. 


 넝쿨에서든 서울에서든 여성들은 지역의 여러 활동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노동을 담당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을 반기고 혹여 소외되는 이가 있을까 마음을 살피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자리가 파할 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 수고를 조용히 해내는 건 주로 나이 든 기혼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지위는 없고 역할로만 존재할 때가 많다. 서울의 내가 만난 ‘지루한’ 기혼 여성들도 인문적 교양을 장착하고 지적이고 부드러운 태도로 지역의 여러 모임과 조직에서 대가 없이 활동을 한다. 단체와 조직은 여성들의 수고와 노동을 당연한 듯 여기고 호명하지 않는다. 나는 헌신적인 여성들이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 좋은 일만 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이 돌봄의 헌신들이 결국에는 남성중심 가부장적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라 여겼다.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 당연시되는 것에 반감을 갖는 내가 따뜻하게 맞아주는 넝쿨 여성들의 환대에는 스스럼없다. 넝쿨의 여성들과 삼 년을 보내면서 기혼과 비혼의 벽도 정상가족에 대한 강박도 느낀 적이 없다. 넝쿨의 돌봄에는 너와 나, 내 가족과 아닌 이들을 나누는 경계가 흐릿하다. 주면 주는 대로, 받으며 받는 대로 산뜻하게 고마울 뿐이다. 철산 4동 넝쿨의 여성들 앞에서는 세련됨을 가장 한 계산들이 초라해지고 대차대조표가 의미 없다. 내가 넝쿨의 여성들을 낭만화하여 생각하거나 시혜적인 시선으로 보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철산 4동 지역 주민인 여성과 작가라는 위치성에 수직적인 위계가 있는지도 생각해 봤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지 찾지 못했다. 


그러다 넝쿨에 가면 내가 어떻게 보일지 긴장한 적이 없다는 걸 최근에야 발견했다. 밥벌이에 관련된 모임들, 공과 사가 얽힌 관계들, 작가들과의 협업 프로젝트에선 타인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며 감정에너지를 쓰곤 했는데 넝쿨에 오면 쓸데없는 자의식은 스르륵 사라진다. 이제 생각하니 넝쿨의 여성들과도 가족 이야기를 자주 하고, 저녁 반찬과 김장 걱정, 엄마가 없으면 불가능한 온라인 학습에 대한 분노도 함께 터트렸다. 나의 주요 이슈가 아닌데도 이물감 없이 즐거웠다. 


최고령자인 유정수 어르신이 결혼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도 자주 했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그동안 날 불편하게 만들던 돌봄이 몸에 밴 수용적인 여성들, 조용히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여성들 덕분에 나는 나에게 편해졌다. 여성의 돌봄은 나와 타인을 무장해제하고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넝쿨의 여성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 다음 글에는 넝쿨의 여성들 중 가장 매력적인 여성, 36년생 유정수 어르신에 대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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