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용한 언니 Nov 14. 2024

마음에 그리는 동네, 마음에 남은 여자들

인연이 닿아도 인연이 다해도

  2017년 가을 나는 경기도 광명시 철산 4동 골목에서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작가인지 반백수인지 쉰 살이 코 앞인데도 늘 반문하던 나는 마음 졸이면 쓴 지원서가 선정되어 예술인 파견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산꼭대기 변두리 동네 철산동은 처음 가는 동네였지만 낯설지 않았다. 철 지난 공공미술 벽화작업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을볕 아래 남의 집 담장에 그리는 그림도 재밌었다. 예술인 파견 사업을 신청한 기관은 철산동에 있는 건축 사무소였지만 마음이 간 분은 철산 4동 넝쿨 어린이 작은 도서관 최미자 관장님이었다. 미자관장님은 철산 4동을 찾은 예술인들에게 동네 곳곳을 안내해 주며 마을 이야기를 해줬다. 이 동네에 또 올 것만 같았다. 


 다음 해 나는 그 무렵 알게 된 젊은 작가와 삼 년 동안 넝쿨 어린이 도서관에서 마을 여성들과 뜨개 모임을 하며 이런저런 즐거운 활동을 했다. 나와 동료 작가의 지역 문화 활동이 철산 4동에 어떤 문화적 영향을 주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몇 권의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린 후 오래 단절되어 있던 작업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예술은 세상을 향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곁의 다정함을 발견하는 거라는 걸 철산 4동에서 알았다. 순박하고 소박한 미덕이 때때로 더 큰 울림이라는 것도 철산 4동 여자들에게 배웠다. 철산 4동 여성들과 함께 한 활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나였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해 여름이 끝날 무렵 카톡으로 인터넷 부고장을 받았다. 철산 4동에서 함께 한 정천순 님이 돌아가셨다. 내 카톡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은 미선생님, 카톡 프로필 사진은 내가 그린 미선생님의 뜨개질하는 모습이었다. 미선생님은 뜨개질의 미적 감각이 좋아서 작가들이 붙인 별명이었다. 모임날이면 늘 먹거리를 들고 오고 며느리 같고 딸 같은 젊은 엄마들 이야기도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잘 들어주셨다. 철없는 예술가 나부랭이 내가 잘난 체해도 웃으셨다. 먹이고 챙기고 주변을 살뜰하게 돌보던 분, 정천순 미선생님. 미선생님 덕분에 넝쿨 도서관이 더 따뜻하고 살가웠다. 

 최미자 관장님께 몇 년 만에 연락을 드렸다. 전혀 소식을 모르고 계셨다. 일을 마치고 버스 시간이 남아 근처 도서관에 들른 참에 내 카톡을 보셨다고 했다. ‘늘 도서관에 계시네요’라고 하자 ‘그러게 말입니다’라고 했다. 문자로 주고받았지만 미자 관장님의 느릿한 목소리가 온화한 표정이 들리고 보이는 거 같았다. 관장님과 나는 미선생님의 명복을 함께 빌었다.


 철산 4동 사람들은 모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철산 4동의 얼굴 같았던, 그 동네를 속속들이 알고 있던 미자관장님은 충청도 면천에 계신다. 어떻게 면천까지 가셨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여전히 일을 하고 퇴근 후 도서관에 들르는 충청도 면천의 생활은 철산 4동의 여러 활동으로 바쁘던 것만큼 좋아 보였다. 미자관장님은 작은책으로 내 소식을 접한다면서 멀리 있는 느낌을 못 받는다고 하셨다. 매달 작은책이 오면 제일 먼저 내 글을 읽는다고 했는데 솔직히 글은 나보다 미자 관장님이 더 잘 쓰신다. 나의 예술도 철산 4동 여자들의 바지런한 뜨개질과 곁을 살리고 돌보는 마음을 따라가면 아직 멀었다. 이분들이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면 정말 좋은 작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도시 재개발로 사라진 동네 철산동, 사계절 모두 햇살이 넉넉히 내리던 동네, 여기저기 서툰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돌아 올라가면 숨어있는 집처럼 넝쿨 도서관이 있었다. 미자 관장님은 나에게 인연이 닿으면 얼굴을 보게 될 테고 그러면 정말 반가울 거라고 했다. 

 최미자 관장님, 정천순 미선생님, 유정수 감독할머니, 국화님, 애경님, 해선님, 정은님 그리고 선혜님. 인연이 닿아도 인연이 다해도 늘 내 마음에 있어요. 모두 고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