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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Nov 21. 2024

아빠는 매일 집을 나간다

나의 늙은 가부장 

  아직 식구들이 이불속에 있는 이른 아침, 아빠는 조용히 혼자 집을 나선다. 일을 나가는 것도 아닌데 매일 어디로 가는지 식구들에게 말도 없이 나가서 늦은 오후에 집에 들어온다. 올 때에는 그날의 신문 한부와 검은 비닐봉지에 과일이나 떡 같은 간식을 사 온다. 어딜 가는지 물어봤는데 집에 있으면 뭐 하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아빠는 어디에 가는지, 무얼 하는지 구체적인 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어보니 뒷산에 갈 때도 있고 시내에 나가 한 바퀴 돌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럼 밥은 어떻게 하시냐고 하니 동네 노인 복지관에 한 끼에 사천 원인 밥을 판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빠는 이른 아침 동네 뒷산을 타다가 내려와 노인 복지관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종종 시내에 나가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언젠가 아빠의 핸드폰으로 온 인증문자를 내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아빠의 핸드폰 사진함에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하는 수문장 교대식을 촬영한 동영상이었는데 아빠는 당신의 얼굴이 나오게 하고서 뒤편으로 수문장 교대식 행렬이 보이게 촬영을 했었다. 마치 요즘 젊은 아이들처럼 말이다. 아빠가 말한 ‘시내에 나가 한 바퀴 돌’며 하는 것 중에 하나같았다. 


 부모와 함께 사는 비혼의 늙수그레한 딸 나는 아빠의 이런 아침 일정이 종종 마음에 걸린다. 그러면서 또 아빠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에는 그것대로 불편하다. 아빠는 거실 소파에서 혼연일체로 핸드폰을 하거나 tv를 보는데 엄마와 내가 좁은 집안을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하는데도 소파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여든이 넘은 남성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살갑게 집안일을 함께 할리는 만무하지만 집에 같이 있어도 아빠는 늘 혼자만의 세계에 있다. 가끔 화목한 가족을 보여주는 tv 예능이나 sns에 넘쳐나는 행복한 정상가족들을 보면 마음은 더 복잡해진다. 다들 어쩜 그렇게 늙은 부모를 애틋하게 사랑하고 잘 돌보는지 모르겠다. 그 흔한 동남아 패키지 관광여행도 하질 못하는 내가 초라해진다. 


 아빠는 매일 반복하는 아침 일정처럼 일 년에 두어 차례 일주일 남짓 역시 혼자서 고향에 다녀온다. 할아버지 산소의 벌초가 고향방문의 목적인데 물론 벌초만 하는 것은 아니고 깨복쟁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더 큰 목적 같아 보이긴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그 일주일의 여정이 이삼일로 줄어들었다. 왜 일찍 올라오시냐고 하니 고향에 내려가도 친구들은 다들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했다. 

 얼마 전 추석이 지나 고향에 내려간 아빠는 내게 문자 메시지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가을 야산 풀숲에서 찍은 사진 같았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묘비가 선명했다. 이름을 보니 할아버지 산소였다. 멀리 아빠의 고향 삼천포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가 본 기억이 내게는 없다. 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서 너 살 무렵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직 벌초 전인지 초라한 할아버지의 산소는 온통 풀로 뒤덮여 있었다. 묘비 위엔 귤 하나가 덩그러니 가을볕에 놓여 있었다. 다들 저 세상으로 건너간 아빠의 친구들 중에 아직 남은 분이 계셔서 사진을 찍어준 걸까? 나는 아빠의 친구들을 잘 모른다. 아빠의 유년도 잘 모르고 매일 아침에 나가 혼자 돌아다니는 늙은 아빠의 하루도 잘 모른다. 아빠의 짧은 대답으로 그저 짐작하거나 상상할 뿐이다. 그런데 나의 가부장 아빠는 장녀인 나에게 할아버지 산소에서 찍은 인증 숏처럼 사진을 보내준다. 아빠의 이 가부장스런 사진은 조금 우습고 더 조금 슬펐다. 내가 보모 돌봄에 종종 가책을 느끼는 건, 그래서 초라한 건 가족은 이래 저래야 한다는 정상성에 대한 강박일지 모르겠다. 아빠는 아빠대로 자신의 남은 시간을 덤덤히 보내는 중 같은데 조만간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 물론 긴 답을 해 줄 거 같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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