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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Nov 28. 2024

혼자라도 외롭지 않습니다

서방도 없고 새끼도 없고 우리는 복도 많지! 

  오래 만나는 선배가 있다. 선배와 나는 서울 변두리 작은 여자 대학을 나온 동문으로 성격도, 취향도 많이 다르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만나고 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나와 다르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선배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선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도 선배를 만났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은 선배는 직장 동료의 자녀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직장 동료도 아닌 그의 자식 결혼식까지 가야 하나 싶었지만 입 밖에 내어 말하진 않았다. 학연과 지연뿐 아니라 각종 이해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나는 부고장이 아닌 청첩장을 받아 본 지가 한참이다. 그런데 이십 년 넘게 한 직장을 다니는 선배는 여전히 직장과 동문 선후배 아이들의 결혼식을 챙기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결혼식이라니, 선배도 나도 결혼이라곤 한 번도 못, 안 한 중년 여성인데 말이다. 결혼식에 다녀온 선배는 피로한 얼굴로 ‘요즘엔 결혼식에 다녀오면 좀 우울해져.’라고 말했다. 감정의 높낮이가 크지 않은 선배가 우울하다니 무슨 일이지 싶었다. 내가 ‘뭐가?’라고 묻자 선배는 의외의 말을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남편만 없는 게 아니야. 아이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할머니라고 불러 줄 손자도 없을 거 아니야. 그런 걸 생각하면 정말 나는 혼자구나, 혼자 이렇게 아무도 없이 늙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져.” 

 선배가 말한 ‘우리’는 독신의 우리, 비혼인 선배와 나를 지칭하는 거였다. 나는 선배가 무안하지 않게 작게 웃으려고 했는데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언니,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인간은 다 외로워. 결혼 안 한 우리는 이미 포화상태인 지구에 좋은 일을 한 거라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인구를 늘리지 않으니 쓰레기도 덜 나와, 탄소 배출도 덜 해, 생태적으로 아주 훌륭한 일을 했으니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한다고!” 

 내가 너스레를 떨자 언니는 ‘너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혼자인 선배는 축의금을 전하며 줄 서서 인사하는 사회적 퍼포먼스, 자식의 결혼을 빙자해서 공공연히 다지는 계층과 인맥의 향연 속에서 좀 외로웠던 거 같았다. 심지어 결혼식에 같이 간 눈치 없는 인간들로부터 결혼이 아니라도 외롭지 않게 남자 친구‘라도’ 만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젊으나 늙으나 비혼 여성에게 이성애 중심의 사회는 꾸준히 성실하게 무례하다. 선배는 급기야 상주도 없을 쓸쓸한 장례식까지 걱정했는데, 죽은 이후의 의식까지 걱정하다니. 태어났으니 죽음이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장례식까지 뭘 걱정하냐고, 사회복지사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국가 시스템을 믿어 보자고 가볍게 말했지만 이번에도 선배는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결혼식도 장례식도 삶의 의례이고 함께 하는 게 도리라는 걸 알지만 결혼하는 이나 망자를 위하기보다 부모와 자식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생애 주기별 의례들은 결국 정상성을 견고히 하거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부추긴다.


 선배의 우울과 외로움에 공감해 주지 못하고 내 잘난 척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착한 선배의 근심들은 늙어감에 대한 쓸쓸함, 곧 닥칠 노후에 대한 불안에 더 가까웠다.  애초에 없는 남편이나 자식을 찾을 거 없이 친구 사이 선배와 내가 앞으로도 계속 잘 지내면 될 일이다. 같이 늙어 갈 남편이나 사랑스러운 자식이 없어도 이렇게 만나 속내 이야기를 나눌 ‘우리’가 있지 않은가. 자주 먼저 연락을 주는 선배에게 이번 연말에는 내가 먼저 보자고 해야겠다. 아직 첫눈이 오지 않았으니 첫눈이 내리면 보자고 할까? 환갑이 멀지 않은 나이에 남자 친구를 만드는 거 보다야 오래 만난 친구와 유쾌한 연말을 보내는 것이 더 쉽고 편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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