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작업의 아카이브_이미 반한 마음이 한 번 더 반해서
노란 색 담장이 길게 이어진 이 골목에서 2017년 8월말 과 9월초, 볕이 뜨거운 때에 벽화를 그렸다. 골목길 끝 그늘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혼자 그릴 때가 더 많았지만 벽화 그리는 내내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심심하지 않았다. 코로나 와중에도 그 자리엔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쓴 채 여전한 모습으로 계셨다.
내가 철산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피아노 계단이 있는 곳이다. 높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면 조붓한 길들이 나오고 텃밭들이 있고 초롱이가 살고, 초롱이 자식들인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고 있는 영신빌라가 있고 넝쿨도서관이 있다. 철산동을 찾은 첫해, 폭염경보가 자주 내리던 여름, 피아노 계단 위에서 저 멀리 시선을 두고 보는 저물 무렵의 여름 노을은 아름다웠다. 그때 이미 반한 마음이 한 번 더 반해서 이 동네를 그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