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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진 Jul 19. 2022

일기 독후감

프롤로그

 어렸을 때 제일 싫어하던 숙제는 일기 쓰기였다. 별로 특별한 일도 없는데, 자꾸 뭘 적으라니…. 

심지어 내가 쓴 일기를 다른 사람, 선생님이 본다는 것은 더 싫었다.      


 그런데, 우리집에 사는 남자 어린이는 일기를 꼬박꼬박 쓴다. 숙제로 시작한 일기지만, 약간 즐기는 것 같다. 놀랍게도. 일기를 쓰면서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심지어 다 쓴 일기를 “엄마, 봐봐요~!”라며 자신 있게 나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의 권유로 일기를 한 편, 두 편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어느덧 나는 아들 일기의 애독자가 되어있었다. 이 일기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 일주일에 딱 두 번만 발행된다. 숙제가 일주일에 2편 쓰기라서 딱 2편만 쓰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두 번째, 10줄 이상 웬만하면 넘어가지 않는다.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너무 길면 지루하고 너무 짧으면 표현하기 어렵다 하신다. 그래서 딱 열줄 작가님이다. 물론 매번 열 줄 아니다. 

 세 번째 규칙은 열 줄이 넘으면 꺾쇠 표시를 남긴다. 몇 번을 왜 이 표시가 있는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 그저 미소뿐.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이 이 비밀을 파악하게 된다면 얼른 내게 말해주시길 바란다. 


 아들의 일기에는 내가 모르는 녀석의 모습이 담겨있다. 남자 친구는 이름만 부르고 여자친구는 성을 붙여서 부른다는 사실, 친구와 놀 때는 무서워하던 개미도 씩씩하게 잡는 초능력이 생긴다는 사실, 속상할 때 자기 마음을 달래고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 등. 평소에 내가 절대 보지도 듣지도 못할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알던 그 녀석 맞나 싶다. 정말 낯선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일기에 적힌 글의 내용도 재미가 있지만, 아들이 꾹꾹 눌러쓴 삐뚤빼뚤 글자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책 귀퉁이에 적힌 낙서, 지우개로 지우다 만 글씨, 맞춤법이 틀린 글자마저도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는 아이의 한순간이다. 언젠가 아들은 반듯하고 맞춤법에 딱 맞는 글을 쓰겠지.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삐뚤빼뚤 글자, 눈에 많이 담아두고 싶다.      

 또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아들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까맣게 홀랑 타버린 냄비를 보고도 아들은 달고나 냄새가 난다고 신기하다고 한다. 아이의 눈으로 본 우리의 일상은 언제, 어디서든 빛나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의 일기. 별 내용 있겠냐 싶지만, 그 속에는 아이의 눈으로 기록된 순간이 있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와 아이의 눈을 빌려 일상을 새롭게 보는 어른의 이야기이다.      


 나는, 아이의 눈을 통해 비로소 새롭게 일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삶을 돌이켜보고 고민하는 시간도 되었다. 일상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10살 아이의 시선은 잊혀진 내 10살의 순간을 비추기도 하였다.      


 아이의 소중한 순간이 일기가 되어 나에게 왔다. 아이의 일기는 나에게 있는 소중한 순간을 발견하게 해주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인생의 순간을 기록해서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이다. 아이는 일기로 자신에게 소중한 순간을 간직한다. 나는 아이의 기록에 나의 기록을 더 해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      

PS. 10살의 기억의 한 부분을 나와 기꺼이 공유해준 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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