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점을 인정하는 것

백합

by 플로리나

며칠 전 같이 일했던 옛 동료로부터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 회사의 신규 서비스 확장으로 직원 채용을 진행하는데 나의 커리어와 잘 맞는 자리라고 한다. 함께 일했던 사람에게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업무적으로, 인간적으로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호평을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고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지나온 인생과는 다르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고 1년 전부터 나는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당장 잘할 수 있는 일’과 ‘준비 과정이 필요하지만 해보고 싶은 일’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모르겠다. 새로운 일을 해보자니 지금껏 나는 그 일과 관련된 경력이 전무한데,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젊고 감각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며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다면 일자리 제안에 감사하다며 덥석 응해야 할 텐데 그러고 싶지도 않을걸 보니 이미 내 마음속의 답변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다만 일을 저지를 용기가 부족할 뿐이다.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자신감 없이 웅크리고 있는 걸까?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 이뤄온 성과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들어보면 내 업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그게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다, 타이밍이 괜찮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며 외부적인 것들에서 성공 요인을 찾곤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일들을 두고도 나의 강점과 능력을 믿고 자신있게 도전할 것이 아니라, 또 한 번 나의 등을 힘껏 밀어줄 운 좋은 타이밍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그러다가 적당한 때라 생각되는 그 시점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우울하다.


얼마 전 나의 글쓰기 메이트로 소통하고 있는 친절한 금금님의 브런치 글에서 가면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친절한 금금님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읽다가 가면 증후군에 대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셨던 모양이다. 가면 증후군이란 외부적으로는 이미 성공을 이뤘지만 스스로 자신의 업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가면 뒤에 숨어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나의 노력과 장점을 인정해줄 것을 다짐하는 친절한 금금님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지금껏 내가 해온 나의 성과를 단순히 운 덕분이 아니라 나의 공 때문이라고 인정한다면, 앞으로 도전하는 일에 대한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경력이 전무한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근거는 과거의 나의 성공 경험에서 찾으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강점이 있어서 예전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언젠가 내가 참석하지 못했던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이 내 칭찬을 하셨다고 팀원들이 회식 다음날 아침 내게 이야기해줬다. 회식에 불참해서 나를 못마땅히 여긴 게 아니라 도리어 내 칭찬을 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팀장님이 날 칭찬한 부분은 나의 꼼꼼함이었다. 내가 항상 책상 앞에 To Do List를 작성해놓고 하나씩 일을 완수할 때마다 지워가곤 했는데 팀장님은 그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 그 할 일 목록에는 큰 일뿐만 아니라 내가 루틴하게 반복해야 하는 작은 업무 단위까지도 깨알같이 적혀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나만 보는 할 일 목록표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가는 동료들이 그걸 다 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작은 일도 잊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챙기는 나의 업무 태도는 동료들과 클라이언트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강점 하나를 새삼 알게 되었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은 필요 이상의 자존심이다. 나는 업무 지시를 받으면 자신있게 그건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성격은 못 된다. 반대로 그건 못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 성격도 못 된다.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자존심에 거절하지 못하고 일을 받아오면 한동안은 굉장히 후회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왜 못한다는 말을 하질 못하니?' 스스로를 원망스러워하며 꾸역꾸역 일을 붙잡고 있다 보면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던 일이 어느 순간 풀리기 시작했다. 못난 자존심 덕분에 나는 끈기 있는 사람이 되는 날이 많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끈기가 나의 강점이라고 믿어도 될 것 같다.


이왕이면 강점 3개쯤은 채우고 싶으니까 하나를 더 찾아봐야겠다. 나는 빼어나게 무언가를 잘하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지만, 뭘 해도 크게 빠지지는 않는 편이다. 요즘 세상에야 뜨뜻미지근하게 이것저것 하는 것보다 하나를 특출나게 잘하는 게 훨씬 낫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 자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다방면에 빠지지 않는 내 스타일 덕분에 좋았던 점을 찾아보면 되겠다. 나는 그 덕에 학교 다닐 때는 특정 과목을 유난히 못해서 애먹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닐 때는 부서 이동이나 업무 변경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었다. 한마디로 적응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도전에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인다.


이렇게 내 강점을 찾으려 스스로의 업적과 능력을 크게 부풀려 놓고 보니,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꽃이 유난히 마음에 드는 날이다. 나는 주로 잔잔하고 귀여운 꽃을 좋아한다. 반면에 존재감이 강렬한 큰 꽃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백합이다. 우아하고 기품 있어 보이지만 활짝 핀 백합의 사이즈는 꽤나 부담스럽다. 향 또한 너무 과하다 싶을 만큼 진하다. ‘나 여기 있으니까 좀 바라봐줄래?’하고 온몸으로 이야기하다 못해 향기까지 사방에 뿜어대는 느낌이다.


내가 백합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겸손이 미덕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글을 쓰며 골똘히 생각해보니 때로는 겸손이 악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명확하게 내가 잘한 부분은 내 덕이라고 스스로를 인정할 줄 아는 자세도 때론 필요할 것 같다. 나의 강점과 능력을 믿어주는 일, 그게 내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거기에 운까지 따라준다면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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