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천 번 노력해본 일이 있나요?

천일홍

by 플로리나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자
실로 남이 백 번 하면
저는 천 번 하는 노력을 하여,
유학길에 오른 지 6년 만에
제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신라시대 문인 최치원의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를 읽다가 만난 문장이다. 신라 시대에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까지 문명을 떨친 위대한 문학가, 최치원은 12살에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어린 나이에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할 만큼 명석했다.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뛰어난 능력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반복이 뒷받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 번으로 부족하면 천 번 노력하는 그의 정신은 같은 책을 읽은 다른 멤버들 마음에도 와닿았던 것 같다. 한 분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은 천 번 노력한 일이 있나요?
또는 앞으로
천 번 시도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글쎄,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물론 비자발적으로 천 번 이상 노력해본 일이 분명 있기는 하다. 학창 시절 입시 준비를 할 때 천일 이상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회사를 다닌 기간이 15년이니까 앉아서 보고서를 쓰던 날도 천일보다 훨씬 더 된다. 하지만 나 스스로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나는 이런 노력들이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독서 모임이 끝나고 혼자 골똘히 생각해봤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41년인데, 그러면 거의 1만 5천 일을 살은 셈이다. 그 기간 동안 내가 원해서 천 번 이상 노력한 일이 없을까? 그러던 중 갑자기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마흔이 다 되어 뒤늦게 시작한 영어 공부였다. 2년 전 디즈니 영화 대사를 따라 하며 영어 공부를 하는 온라인 모임을 알게 되었다. 영어 쉐도잉 기법을 활용한 공부법인데, 그림자(쉐도잉)처럼 영화 대사를 바로 뒤따라가며 스피킹 연습을 하는 것이다. 영어 쉐도잉을 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이전에 대사를 반복해서 들어봐야 한다. 즉, 리스닝이 먼저 수행이 되어야 스피킹 숙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숙제 제출 규칙은 약 3분 분량의 영화 대사를 따라 하면서 녹음한 내 목소리 파일 2개를 제출하는 것이다. 달랑 2번만 녹음하면 되는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녹음하기 전에 귀를 쫑긋 세운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영상 소리를 들어본다. 그 후에 대사를 열심히 쫓아가며 녹음을 하는데, 절대 한 번에 녹음이 되지 않는다. 하다 보면 입이 꼬여서, 다시 녹음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스터디는 90분짜리 영화 한 편을 약 3분 분량 영상 30개로 나눈 뒤, 30일간 공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니 스터디 하나를 완주하게 되면 총 60개의 녹음 파일이 만들어진다. 딱 2번의 시도로 2개의 파일이 만들어지는 날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 내가 시도하는 횟수는 최소 100회 이상이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2년 동안 15편의 영화를 가지고 영어 쉐도잉 연습을 했다.


15편 X 60회 = 900회

15편 X 100회 = 1,500회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나는 영어 공부를 위해 천 번 이상의 같은 노력을 반복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숙제 완료 기준으로 보면 900회, 그전에 깔끔하게 녹음하지 못했던 시도까지 더하면 1천 번이 족히 넘는다. 이렇게 해서 실제로 영어 실력이 올라갔냐고 누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문제집만 가지고 영어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실질적인 생활 영어를 익힌 경험은 없고, 시험 유형을 파악한 경험만 많다. 그래서 외국인을 만나면 입도 뻥긋 못했다. 입만 트이지 않은 게 아니라, 귀도 열리지 않았었다. 스터디 초기에는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을 봐도 자막 없이는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가벼운 주제의 미국 영화는 무자막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외국인을 만나면 생활 영어 정도는 두려움 없이 할 수 있게 됐다.


과연 내가 천 번 넘는 반복 학습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수험생도 아니고, 업무를 위해 비즈니스 영어가 필요한 사람도 아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막상 영어를 잘해도 써먹을 데가 없긴 하지만, 그냥 로망 실현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조금씩 귀가 열리고 발음과 억양이 개선되는 게 뿌듯했다. 영어로 듣는 일이 편해지니 영화를 볼 때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담겨있다는 말을 서서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특정 상황에서 우리 말로는 저렇게 표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생각지도 못 했던 단어와 표현을 쓰는 게 신기했다. 영어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영미권 문화를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외국어 공부를 하며 나의 세계관이 커져간다는 게 흥미로웠다. 이게 바로 천 번 넘는 노력을 하게 한 힘이었다.


같은 일을 천 번 시도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걸 유지하게 해주는 힘은 바로 흥미다. 재미있어야 내 안에 흥과 열정이 끌어 올라서 열기가 식지 않는다. 그 열기는 내게 자신감과 또 다른 도전의식을 불지펴주는 것 같다. 평생 숙원 과제 같았던 영어 공부에서 어느 정도 원하는 결과를 얻고 나니 외국어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붙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몇 달 전부터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양한 제2외국어 중에서 프랑스어를 선택한 이유는 프랑스 문화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화에 친숙해지고, 프랑스로 여행 가서 능숙하게 불어로 의사소통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머릿속에 꿈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벌써 설렌다.


내가 좋아하는 꽃 중 하나가 천일홍이다. 산딸기처럼 앙증맞은 모습이 참 예쁘다. 게다가 ‘천일홍’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의미가 매력적이다.


‘천일동안 붉게 물든다.’


이 꽃은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고운 자태를 굉장히 오랫동안 유지한다. 그래서 꽃을 말려서 드라이플라워로 감상하기도 한다. 나도 천일홍처럼 오래오래 붉은 열정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안의 열기가 식지 않도록 흥미라는 연료를 오늘도 한 줌 집어넣어 본다.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며, 세계 각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많은 문화권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날까지 1000일, 2000일…. 즐겁게 반복하고 싶다.


당신도 천 번 시도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원하는 결과를 얻는 그날까지 천일홍의 붉은 열정이 당신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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